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지난 25일 오후 6시 달서문화재단 웃는얼굴아트센터 청룡홀.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인 애산 이인 선생(1896~1979)을 기리는 창작뮤지컬 ‘애산’의 2회 공연 중 마지막 공연이 열린 무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관람객이 드문드문하게 앉아 있었지만 티켓 파워는 대단했다. 오픈하자마자 4시간 만에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기반으로 출연진의 열연 덕분에 작품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제작진이 땀 흘려 마련한 뜻깊은 공연이 2회에 그친다는 점과 함께 애산 선생이 대구 출신이란 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애산 선생은 대구시 중구 사일동에서 태어난 항일 인권변호사이자 조선어학회 33인 중 한 명인 한글운동가다. 일제강점기에 의열단 사건과 6·10만세운동 사건 등으로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을 변론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4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해방된 뒤에는 초대 법무부장관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유언을 통해 모든 재산을 한글학회에 기증함으로써 한글회관 건립의 밑거름이 되게 했다. 이같은 애산 선생의 얼을 기리기 위해 대구변호사회는 2016년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옹호에 현저한 공로가 있는 시민이나 단체를 포상하는 ‘애산 인권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올해는 무장독립운동사에서 기념비적인 승전보를 울렸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가 100년 되는 해지만, 독립운동을 기리는 분위기가 지난해 독립만세운동 및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비해 크게 위축된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해 연말부터 국내에서 감염자가 나타난 코로나19 사태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최근 들어 독립운동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대구와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책이 잇따라 출간되는 한편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지난 2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시민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이날 추진위원회는 대구가 독립운동의 성지였으나 이 사실을 모르는 시민이 많으므로, 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해 애국지사를 기리고 역사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은 1910년대 최고의 무장항일결사체인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재룡 지사의 장남 우대현 선생이 대구 동구 용수동 팔공산 기슭의 사유지 4만7천여㎡를 독립운동기념관 부지로 기부하면서 가시화되고 있다. 이날 참석자 중 일부는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두산 선생이 작사·작곡한 ‘광복군 행진곡’이 연주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대구는 항일의병운동사와 독립운동사에서 거점 역할을 한 도시다. 통계만 살펴봐도 그렇다. 2020년 현재 국가보훈처가 인정하는 독립운동유공자 수를 1925년 당시 인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대구(159명)는 시민 481명에 1명, 서울(427명)은 802명에 1명, 부산(73명)은 1천461명에 1명, 인천(22명)은 2천556명에 1명꼴로 서훈을 받았다. 실제 대구는 을미사변 이후 최초의 항일의병장 문석봉 선생을 배출했으며, 광문사를 중심으로 김광제 선생과 서상돈 선생이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이다.

또한 1910년대 대표적인 국내 무장항일단체인 대한광복회가 달성토성에서 결성됐으며, 1920년대 무장투쟁을 선도한 의열단 창단 자금을 제공한 부단장 이종암 선생 등 무수한 독립지사를 배출한 도시다.

대구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버금가는 형무소가 존재했다는 점에서도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 매일신문 정인열 논설위원이 쓰고, 대한광복회 백산 우재룡선생 기념사업회가 펴낸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에 따르면 대구형무소에서 독립지사 180명이 순국했다. 이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지사가 175명보다 많은 수다. 당시 사법제도에 따라 대구는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 일부지역의 독립지사들의 순국터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구형무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중소도시에도 있는 독립운동기념관이 대구에는 아직까지 없을 정도로 독립운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구 출신 저항시인 이상화의 맏형인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이 1931년 ‘혜성’ 10~11월호에 발표한 ‘남북만 일만리 답사기’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가 쉽게 풀어 쓴 ‘국민혁명군 이상정의 북만주 기행’이 최근 출간됐다. 이상정 장군은 일제강점기 충칭육군 참모학교 교관, 신한민주혁명당 중앙위원, 군사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윤봉길 의사에게 폭약을 구해주는 등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부인 권기옥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로, 국내와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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