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학년이 바뀌면 담임선생님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학생 실태조사’였다. 질문과 손들기가 20번 이상 반복됐다. 편부, 편모, 조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 관계 조사를 먼저 했다. 그 다음에는 부모님의 재산, 교육 정도, 직업 등을 조사했다. 재산은 자가, 전세, 사글세, 월세 조사에 이어 라디오, 카메라, 재봉틀, TV, 오르간, 피아노, 자가용까지 점차 단계가 높아졌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 절반 이상의 집에 라디오가 없었다. 마을마다 유선으로 연결된 스피커만 달아주고 각 방송국의 뉴스와 인기 연속극 등을 듣게 해주는 사업자가 있었다. 우리는 그 집을 방송국이라고 불렀다. 봄에는 보리 한말, 가을에는 나락 한말을 시청료로 냈다. 방송 프로그램을 바꿀 때마다 안내해주는 아가씨도 있었다. 손들기의 압권은 오르간과 피아노였다. 그런 악기가 있다고 손을 드는 아이에게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초등 3학년 정도만 되면 그 친구의 아버지가 육성회 이사가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수원, 방앗간, 술도가 등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역 유지 노릇을 했다. 주민 대다수의 직업은 농업이었고, 공무원도 드물게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다. 유난히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가 “아버지는 일이 있을 때는 나가시고 없을 때는 집에 계십니다. 우리 아버지 직업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망설이지 않고 ‘그건 막노동이야’라고 답했다. 순간 일그러지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많은 선생님들이 학급의 크고 작은 일들을 지역 유지 자녀에게 맡겼다. 상식 밖의 특혜를 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부모 학력 조사 때는 늘 마지막에 묻는 ‘무학’에 손을 들어야 했다. 후에 ‘한학’이란 항목이 생겼을 때 엄청 기뻐했다. 아버지가 어느 정도까지 공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우리를 훈계할 때 자주 공자나 맹자, 명심보감 등을 인용했던 것만 기억한다. 가난한 수재들은 부모의 재산과 직업에 따른 차별에 대놓고 불만은 표하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뼈에 새겼을 것이다. 헐벗고 굶주렸지만 총명한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시험 점수만은 부모의 직업이나 재산이 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에 대한 확신이 우리 사회를 활력에 넘치게 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공정한 경쟁이 사라졌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입시에서도 가진 자의 자녀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학생, 학부모가 많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용잡급직으로 떠돌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신음하고 있다. 오죽하면 명문대 출신보다는 결혼할 때 양가집으로부터 집을 물려받거나 전셋집을 지원받는 자가 승자라고 말하겠는가. 그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고, 집 없는 자가 월급을 모아 집 사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며 어깨를 늘어뜨린다.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에는 각종 시민단체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조직을 이끌던 사람 상당수는 시간과 더불어 권력의 핵심부나 그 주변에 편입되어 권력의 시녀로 전략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기득권에 편입되고 완장을 차게 되면 이들의 사고는 급격하게 경직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생결단이다. 상부상조하며 동병상련하는 동지가 없으면 홀로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무서운 자는 시류에 편승하여 위선으로 출세하고는 오만과 독선, 적반하장과 후안무치의 갑옷을 입고 정도와 상식을 무시하며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박탈감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가진 것 없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원하는 곳에 취직해 집 사고 처자식 부양하며 부모님도 봉양할 수 있었던 부모님 세대가 한없이 부럽다. 라면과 김밥으로 배는 고프지 않겠지만 흙수저는 영원히 흙에 묻혀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들의 탄식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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