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저거 죽여야겠다, 항명, 쿠데타, 건달두목, 똘마니, 깡패같은 짓, 가학, 꼴값….

최근 뉴스에서 쏟아지고 있는 말 속의 단어들이다. 막말이라고 하면 으레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이려니 했는데 이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쏟아내고 있다. 너도 나도 막말 개인기를 펼쳐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가히 막말 경연대회다. 뉴스를 보기듣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보고 듣고 있는 내내 불편해서다.

도를 넘어서고 있는 막말은 들을 줄 몰라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때론 아예 들으려 조차 하지 않아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병사들과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다.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과 자주 어울린 장소는 운주당(運籌堂)이었다. 원래는 장군의 개인 집무실 겸 독서공간인 서재였다. 그는 왜 개인공간인 이곳에서 병사들과 계급장을 떼고 술을 마셨을까.

소통이었다. 이곳에서 참모진들 뿐 아니라 일반병사들과 어울리며 전략을 이야기하고 토론도 즐겼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친 명량해전도 이같은 병사들과의 소통에서 출발했다. 울돌목은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닷길이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하루 4번 물의 흐름이 바뀌고 물살이 빠른 곳이다. 평소 병사들의 말을 경청했기에 해안의 물길과 지형, 조류의 흐름을 완벽하게 꿰뚫고 그에 딱 맞는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방송인 신동엽의 소통방식도 배울 만하다. 그는 방송 출연자가 이야기할 때는 말허리를 자르지 않는다. 대신 적절한 시점에 “아하!” “그래서요?” 등의 감탄사로 추임새를 넣을 뿐이다. 출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하게 반응을 하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뿐이다. 그러면 출연자는 마음을 열고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사연들을 털어놓는다. 이기주 작가의 책 ‘말의 품격’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말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모언(貌言)과 지언(至言), 고언(苦言), 감언(甘言)이다. ‘모언’은 화려한 반면 실속이 없는 말인 반면 ‘지언’은 속이 꽉 찬 진실된 말이다. ‘고언’은 듣기에는 거북한 직언(直言)이지만 약이 되는 말을 의미하며 ‘감언’은 듣기에는 편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을 끝내 병들게 하는 말이라고 했다.

사마천이 이야기한 모언이나 감언보다 더한 말들이 지금 넘쳐나고 있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말 치고는 품격이 많이 떨어진다. 수준이 너무 낮다.

하도 들어서인지 말이 품격을 이야기하기엔 이들의 막말 퍼레이드가 너무 화려하다. 아니, 애초부터 품격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정도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서로가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는 야권의 정치인들이 막말을 많이 쏟아냈다. 최근엔 여권 인사들의 막말이 뉴스를 장식한다. 여기엔 힘을 잃은 야당도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 21대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여당견제라는 야당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여권 인사들의 말로 하는 표현이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이들은 자기들 지지층 입맛에 맞는 말만 쏟아내고 있다. 그래선지 이들은 진정 ‘남의 귀를 즐겁게 해주다 보면 내 귀도 따라 즐거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도 끝내 외면한다.

정치의 역할은 대립, 대결의 국면을 소통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막말을 통해 갈등만 조성하고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으니 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차라리 사마천이 이야기하는 실속없는 말인 ‘모언’과 듣기 편한 달콤한 말인 ‘감언’이 더 나을 듯싶을 만큼 막말의 쓰레기더미는 커 보인다. 이젠 막말잔치 수준이 아니라 막말전쟁에 돌입한 상태이고 보면 공멸로 가는 지름길로 보여 더 답답하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도끼처럼 남을 해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다. 말의 품격 저자 이기주는 책에서 ‘말은 나름의 귀소본능을 지닌다’ 고 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고 돌고 돌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는 설명이었다. 내가 휘두른 혀 아래의 도끼는 결국 내게로 향한다. 제발 말의 품격을 지켜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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