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잠깐 내린 비가 세상의 먼지를 다 씻어간 듯 산뜻한 하늘이다. 선별진료소 당직을 서다 보니 여러 가지로 가슴이 아릿하고 먹먹하였다. 결혼식을 앞두고 자꾸 열이 오르내리는 듯하여 걱정만 해대다가 검사라도 받고서 음성임을 확인하고 꼭 참석하고 싶어서 왔다는 초로의 신사, 이제껏 일하다가 잠시 쉬고 난 다음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니 코로나 검사 결과를 요구하여서 할 수 없이 검사하러 오게 되었다는 할머니, 소방관 시험을 보려고 마음 단단히 먹고 자가격리에 준하는 생활을 하다가 시험 당일 일찍 출발하여 시험장에 들어가 있다가 잠시 밖에 나와 친구에게 전화 후 들어가려고 다시 잰 체온에서 높게 나와서 바로 119를 타고 들어온 젊은이의 사정이 참으로 딱하게만 느껴진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아도 될 검사에 불필요한 걱정이지만, 코로나19의 현재 같은 전국적인 발생의 위험 상황에서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시험을 준비하다가 잠시 오른 체온으로 선별 진료를 받게 된 젊은이는 아무리 설명하여도 검사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면서 접수부터 문진 수납 검사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의 진을 빼게 했다.

선별진료소를 가봐야 한다고 했지 검사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냐며 끝까지 우기는 통에 더운 여름날에 상대하는 이들의 체온이 더 확 오르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만 내 신용카드를 내주었다. 이것으로 계산하고 검사하고 가도록 하라고 일렀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고맙다든가 미안하다든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검사를 마치고 지루하게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를 타고 돌아갔다.

직원들이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이리 어루만지고 저리 달래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고 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잊어버리자면서 마음을 달래주었다.

나날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숲들은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이고서 성하의 계절임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려주려 애쓴다. 녹음이 짙은 정원의 나무들에 눈을 돌리며 마음을 달래보려고 계족산 등산을 다녀온 지인이 두고 간 책 하나를 펼쳐 들었다. 마음 명상록이었다.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인각사를 다녀왔던 터라 깨끗해진 마음으로 단숨에 읽었다. ‘구나· 겠지 ·감사’가 마지막에 남았다.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3단계 비법이 지금 같은 코로나 19로 우울감이 드리운 시대엔 특효약이 될지도 모르겠다.

1단계는 마음을 상하는 일을 당했을 때 ‘그가 내게 이러는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대개는 쉽지 않을 터이다. ‘아니 감히 내게?’ 하며 속이 상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반응 아니겠는가. 그러나 마음을 1초만 가라앉히고, ‘그가 내게 이러는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 된다.

2단계는 ‘이유가 있겠지’ 라며 양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나 말에는 이유가 다 있다. 단지 내가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어쩌면 상대에게는 이미 충분한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꾹 참아왔던 것이 여러 번의 자극으로 폭발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어쨌든 상대가 그러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3단계는 ‘~하지 않는 게 감사하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은 늘 있을 수 있다. 얼마든지 더 나쁜 상황이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좀 다행스럽지 않겠는가.

마음이 거의 모든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할 때 자기 자신에게 신경 쓴다. 남이 하는 이야기도 본인에게 비추어 생각하곤 한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나에 관해 화살표를 향하지 말고 상대방이 무슨 생각과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하면 크게 배려도 할 수 있고 더 넓은 세상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선한 자는 타인을 돕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고 악한 자는 어리석게도 자신의 이윤만 챙기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만 잘 다스리면 우리의 삶이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목걸이라도 목에 걸 때 의미가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오솔길이더라도 즐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구나·~겠지·~감사’. 성자들의 가르침 중에서 지금 우리가 행하면 정말 좋은 약이 된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불편한 상황, 불쾌한 마음이 드는 경우에 기계적으로가 아니고 명상적으로 ‘~구나’ ‘~겠지’ ‘~감사’를 실천해 가며 즐겁게 잘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마음만 잘 다잡고 있으면 이런 힘든 날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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