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박완서

~돈 욕심에 양심을 팔순 없다~

…수남은 시골에서 올라온 열여섯 살 소년이다. 청계천 세운상가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한다. 주인은 전기용품으로 잔뼈가 굵은 할아버지뻘 되는 장사꾼이다. 수남은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재미로 더 부지런히 일한다. 세 사람이 할 일을 어린 수남이 몇 푼 받지 않고 혼자 감당하고 있다. 주인 영감은 공부를 시켜준다고 자랑삼아 말하지만 실질적 배려나 도움은 전혀 없다. 입시철이 지났지만 빈말도 없다. 수남은 밤늦도록 공부하며 또 봄을 맞는다.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봄날, 이웃 가게의 간판이 떨어져 길 가던 아가씨가 다쳤다. 병원까지 갔다 온 가게 주인은 손해가 막심하다고 울상이다. 재수가 없는 날 같다. 그 와중에 단골소매점에서 배달 전화가 왔다. 수남은 인근 단골집에 자전거로 형광램프를 배달한다. 돈을 두고서 외상 하려고 하지만 끈질기게 기다린 끝에 겨우 돈을 받아낸다. 장사꾼의 나쁜 습성에 진저리가 난다.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온 수남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깜짝 놀란다. 세찬 바람으로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옆에 주차해둔 고급 승용차를 긁어놓은 것이다. 차주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어림도 없다. 차주는 당장 배상하지 않으면 자전거를 담보로 잡아두겠다고 한다. 자전거 바퀴에 자물쇠를 채우곤 사무실로 들어갔다. 수남은 바퀴가 잠긴 자전거를 번쩍 들어 옆구리에 붙이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도망치는 중에 수남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주인 영감은 자기에게 손해가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인 듯 운이 텄다며 수남을 두둔한다. 주인 영감은 자전거의 자물쇠를 절단하며 똥색 양심을 드러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남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수남의 형은 절도죄로 지금 감옥에 있다. 돈 벌러 집을 떠나 올 때, 수남의 아버지는 도둑질만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수남은 자전거를 훔치듯 들고 도망쳐 온 일을 후회했다. 돈만 밝히는 주인 영감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다. 도덕적으로 자신을 견제해줄 아버지가 그립다. 마침내 수남은 양심을 일깨워 줄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산업화시기에 시골의 잉여인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도시의 공장과 가게로 몰렸다. 세운상가도 무작정 상경한 촌놈들로 넘쳤다. 수남은 전기용품 유통을 익혀 독립하는 꿈을 안고 점원으로 일한다. 주인은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여우다. 자잘한 입발림말로 수남을 현혹한다. 공부를 시켜 줄듯이 말하면서 그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소중한 고생 경험을 그 뒤를 밟고 있는 수남에게 물려주기는커녕 호의를 베푸는 척 교묘히 꼬드기고 착취한다.

돈이 있으면서도 외상을 놓으려는 장사꾼의 습성을 알고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익힌 수남이 안쓰럽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승용차를 자전거로 긁었다면 그 손해를 의당 배상하여야 한다. 배상하는 사람도 조금 억울하겠지만 긁힌 상대방은 더 억울하다. 바람한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전거 주인이 책임지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어린 소년이라면 그 보호자나 후견인이 책임질 일이다. 자전거를 들고 도망가라고 종용하는 행태는 어른답지 못하다. 주인 영감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그 손해를 배상해주어야 마땅하다. 돈 몇 푼 아까워 양심을 외면한 주인 영감은 어린 수남에게 결코 귀감이 될 수 없다. 소년에게 필요한 건 도덕성을 견제해줄 참된 어른이다. 갈등하던 수남은 결국 그의 양심을 지켜 줄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릴 때까지 소년은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하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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