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니나 마자르(Nina Mazar)와 첸보 충(Chenbo Zhon) 교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먼저 피실험자인 학생들에게 친환경제품과 일반제품이 섞여있는 구매 목록 중에서 원하는 물건을 고르도록 한 다음 이어서 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실험을 진행했다. 모니터 화면을 보고 점이 반짝일 때마다 엔터(Enter) 키를 누르고 엔터를 클릭할 때마다 5센트씩 가져가라는 조건이었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오직 양심에 맡긴 실험이었다. 그런데 실험 결과가 흥미롭다. 친환경제품을 고른 학생들이 거짓으로 클릭하고 돈을 가져간 횟수가 일반제품을 고른 학생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 것이다.

왜 친환경 제품을 고른 ‘도덕적’ 학생들이 ‘비도덕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한 것일까. 이를 학자들은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로 설명했다(도덕적 허가 효과라고도 한다). 과거에 선행이나 도덕적인 행동을 했으니 어느 정도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괜찮다고 여기는 심리적 기제이다. 나는 이미 친환경제품을 고른 도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은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해도 여전히 남들보다는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면허 효과는 일상생활에서도 보상심리라는 형태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오늘 2시간이나 열심히 운동했으니 치맥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평소에 에코백을 사용하고 있으니 플라스틱 컵 하나 정도야 괜찮겠지?라며 합리화시켜 나간다.

도덕적 면허 효과는 개인이 아닌 기업 차원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기부의 대명사로 알려진 미국의 한 에너지회사가 알고 보니 유령회사를 세워 회계를 조작하는 등의 불법적인 일들을 꾸준히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회사는 기부를 많이 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결국 2001년 파산하고 말았다.

미국의 종합경제지 ‘포춘’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무책임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적이 있다. 런던정경대학과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공동조사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회적 책임에 많이 투자한 기업들이 예상외로 나중에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도덕적 선행이나 행동을 한 개인이나 기업은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자만심이 커진다. 도덕성에 대한 자기 이미지가 강해지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는 자기 정당화의 한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나쁜 일이야 괜찮겠지”하는 심리를 갖게 되어 결국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도덕적이라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자신이 했던 의미 있는 일들만 생각해 자신의 일탈행위에 대한 죄의식마저 없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일반인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편법을 일삼고도 “관행이었다” “도덕과 양심에 비춰 부끄럽지 않다”고 강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수십년 이어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수많은 악조건을 헤쳐오면서 아닌가. 그래서 이들에게는 앞서 이야기한 ‘도덕적 면허’가 일정부분 주어져온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의 실수나 과오가 있어도 눈감아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면허를 주어진 자격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일이다. 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과 관련된 의혹이 걷히지 않고 있다. 본인이 구체적인 물증을 가지고 증명하지 않는 이상 회계부적절성이나 횡령 혹은 배임 의혹은 해명만으로는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운동가로서의 활동이 곧 면죄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윤 당선자도 ‘도덕적 면허 효과’라는 굴레에 빠져든 건 아닌가 걱정에서 하는 말이다. 개인이 책임져야할 일이 있다면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건 정의연이라는 단체와 운동가라는 개인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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