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정말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한다. 혼자서 실실 웃음을 날릴 정도로 흥겨운 마음으로 발걸음 가벼이 시골로 향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서니 길가에는 코스모스를 닮은 노란 꽃들이 줄지어 피어나 불어대는 바람에 흔들거린다. 아카시아 향긋한 향내를 등에 업고 어서 오라고 반갑게 손 흔들어 환영해대는 것 같다.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른 하늘과 길가의 노란 꽃들, 코끝에 스며드는 향내가 행복한 기운을 마구 솟구치게 한다. 누구라도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고 싶어진다.

3월 말로 임기가 끝난 지회장의 자리를 코로나 사태로 넘겨주지 못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임원들과 의논하면 그때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결론을 못 내었다. 할 수 없이 익명으로 개최에 대한 찬반투표를 하였다. 결과는 10중 8이 방역 수칙을 지켜 간략하게 식을 치루고 넘겨버리자는 의견이었다. 일단 결정하자 일사천리로 총회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의사들이니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모범을 보이는 차원에서라도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하면서 모임을 성공적으로 잘 진행해 보자며 결의를 다졌다. 여느 총회 같으면 초대해야 할 손님도 많았겠지만, 대부분 생략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겠다는 분들이 많았다. 서울 이태원 발 코로나 확진자가 자꾸 발생하는 상황이라 혹시라도 감염이 생기면 그 감당을 어찌할까 걱정 많이 되어서 인원을 최소로 제한하였다. 새로 바뀐 중앙의 집행부에서도 참석한다고 연락이 왔다. 마음은 고맙기 그지없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걱정이 이만저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행여 오고 가는 먼 길에 일이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싶어 몇 차례나 걱정스럽다는 뜻을 전했지만 대구·경북 회원을 격려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 탈 없이 행사를 치를 수 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맡은 임무를 할 때는 몰랐었는데 임기가 끝나고도 옷을 벗지 못하고 있으려니 빌려 입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정말 불편하였다. 두 달이나 늦게나마 번갯불에 콩 구워먹 듯 어깨를 누르고 있던 짐을 벗어 버리고 나니 정말 날아갈 듯 홀가분하였다. 임원들도 같은 기분인지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손님들이 다 떠난 강당 앞에서 그간의 고생담을 이야기하면서 얼른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회포 풀 날을 잡아보자고 한다.

회원들과 헤어져 차를 천천히 몰아 집에 도착하니 미국에 사는 아이가 카톡을 여러 개 보내 놓았다. “시원섭섭하시죠? “, ”이젠 아빠한테 공사다망(공과 사가 다 망한다) 한다는 이야기는 안 듣겠네요.“ ”엄마만의 시간을 느긋이 즐겨보세요.” 창의력 퀴즈도 풀어보세요. ‘창의성 퀴즈’에 들어갈 숫자는 무엇일까요? 〈18=6 23=11 10=10 13=?〉문제를 풀어보면서 잠시나마 허전해질 엄마의 마음을 달래보라고 하는 아이의 배려인 모양이다. 입고 있던 겨울 외투를 벗은 듯 홀가분하기만 한데, 자꾸만 “시원섭섭하지?”라고 묻는 이들이 있어서 언젠가 정말 그런 기분이 들까? 싶은 생각도 든다.

코로나19가 심각하게 밀려왔던 대구·경북은 큰 전쟁을 치르고 났으니 어지간한 환자 발생에는 대결 능력이 생긴 것처럼 여겨진다. 그동안 심하게 두들겨 맞았기에 어느 새 맷집이 생긴 것이다. 서울발 코로나가 지역사회로 스며들어 산발적으로 대구에도 발생하고 있다. 고등학생 개학으로 발생한 코로나 무증상 환자도 입원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입원 환자수는 많이 줄었다. 코로나 전담 병원이다 보니 아직 일반 입원환자는 받을 수 없고 외래 진료만 열어서 환자를 진료해야 하니 병원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스텝 회의를 하는 중간에 무거운 침묵과 한숨이 오간다. 코로나가 끝나야 일반 환자가 마음대로 오갈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코로나가 우리 삶을 정말 많이 바꾸어간다. BC(Before corona 코로나 발생 전),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쩌면 코로나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우리 인간의 삶과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때때로 나타났다가 조금 더 신경 써서 처리하고 관리하고 모두 마음 쓰면 사라지는 척하다가 또 나타났다가 하면서 자꾸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 AC가 아니라 어쩌면 WC(with corona)의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랴 싶다. WC는 (water closet) 화장실을 뜻하지 않은가. 코로나는 치료약이나 백신이 없기 때문에, 치료제가 있고 백신이 있는 감염병을 치료하는 완치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일 매일 화장실을 드나들면서 우리의 건강을 살피고 관리하듯이 끝까지 자기 스스로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신경써야하는 것, 바로 관리의 개념을 도입해야 하는 난제일 듯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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