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外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바른 길인지 어떤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마음 가볍게 들춰보면 위안이 되는 책 한 권. 이번 주는 최근 서점가에 새로 진열된 인생의 나침반 같은 산문집을 소개한다.

▲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종현 지음/조계종출판사/252쪽/1만4천 원.

지난 11년간 월간 ‘해인’ 편집장을 지낸 대구 팔공산 도림사 주지, 종현 스님의 산문집이다.

매일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연화장세계, 불교계 대표 사찰 해인사 행자실의 전통적인 풍경부터 비밀스럽게 구전되는 절집의 수행담까지 스님들이 수행하는 산속 생활을 담았다.

청주 마야사 주지 현진 스님은 “이 책에는 촌철살인의 대화도 있고,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문답도 있다. 이론과 지식을 초월하는 파격도 담겨 있어 통쾌한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법상 위의 법어보다 더 생생한 현장 법문이라 할 만하다. 모두가 비단에 놓인 꽃이라서 그 어느 것도 버릴 게 없다. 행간마다 어리석음을 타파하는 취모검들이 총총하다”라고 극찬했다.

20년 전 범어사 선원 동안거를 보내던 종현 스님은 참선하다가 잠시 멈추고 산책을 하는 포행 길에서 한 여인과 마주친다. 처음 보는 여인은 길을 가로막고는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스님,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돌아서며 스님은 얼굴이 뜨거워지고 온몸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이후 스님은 오래도록 그 물음을 곱씹으며 자문해보았고 어느새 화두가 돼버린 그 말을 제목 삼아 2020년 봄, 자신의 수행 여정을 담은 산문집을 펴냈다.

이 책에는 종현 스님이 직접 겪었던 출가 과정을 토대로 해인사로 출가한 이들의 첫걸음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출가자가 해인사로 들어가면 일주일간 속복 생활을 한다. 삭발하지 않고 행자복도 입지 않은 채 출가한 복장 그대로 대기하는 생활이다.

첫날 보경당에서 삼천배를 하고, 이후 6일간 벽을 보고 서있다. 인내와 의지를 시험하는 극한의 시간은 앞으로 다가올 수행 길, 출가 의지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행자 생활 일주일이 되면 삭발식을 한다. 상행자들의 ‘참회진언’ 염송 속에 원주스님이 머리를 깎아주고, 속복들은 기쁨과 슬픔이 담긴 눈물을 흘린다. 삭발을 마치면 선행자 중 막내는 밭에 미리 파둔 구덩이에 행자들의 머리카락을 묻고 ‘반야심경’을 외우며 그들이 무사히 사미계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준다.

▲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복병학 지음/모아북스/256쪽/1만5천 원.

어느새 중년. 머리엔 하루가 다르게 새치가 늘어가고 눈가엔 주름이 깊어만 간다. 몸의 노화가 눈에 띄게 뚜렷해지지만 마음은 나이 들지 않는 시기. 취향이나 행동이나 신념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떨어지지 않는 이 복잡한 나이에 이른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그렇다고 늙었음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중년이 되면 누구나 인생무상을 느끼고 사는 게 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25년 넘게 사회인으로, 전문가로, 직장인으로 살면서 가장으로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살아온 중년의 저자는 일상에서 관찰한 주변 사람과 풍경 속에서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삶을 관찰하고 매일 꾸준히 써온 글 중에서 ‘인생’이라는 큰 키워드를 위주로 뽑아낸 글 묶음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특별할 것 없는 생활의 풍경과 취미 활동 속에서도 가볍지만 섬세하고 단순하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는 글로 인생의 의미를 탐구한다.

저자가 큰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나이’다. 당연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구나 현실로 당면하게 되는 ‘나이 듦’이라는 현상을 경험하면서, 특히 100세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인생의 절반이자 반환점에 해당하는 중년에 이르면서 저자는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삼았다.

중년이 되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다. 마음은 몸처럼 나이 들지 않고 눈도 취향도 행동도 좀체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만큼은 늙지 않는다는 것. 다만 성숙한 50대는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근엄함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수양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 일관되게 추구하던 물질에 대한 욕망을 과감히 내려놓고 방향 선회를 해보자고 권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활용해 재능 기부와 봉사로 인간미를 키워 스스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주위로부터 존경받는 어른이 돼 보자는 것이다.

나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고집과 아집으로 퇴화되지 않으려면 부단히 스스로 연마하고 사색하며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안내해줄 것이다.

▲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임창아 지음/학이사/192쪽/1만3천 원.

“종종 사랑에 관해 질문하거나 받을 때가 있지요.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간편하고 납작하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눈이 멀고 숨이 멎으면 사랑의 잔혹은 사랑의 매혹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임창아 시인의 첫 산문집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가 출간됐다. 학이사의 산문 기획시리즈 첫 작품으로 출간된 작가의 언어에는 속도감이 있다. 특히 잡음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이 읽는 이에게 청량감을 준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매력적이다. 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여자처럼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며 슬픔과 당당히 마주한다.

산문집은 각각 ‘어느 날’, ‘문득’, ‘그윽하게’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어느 날’에서는 한 단어에 꽂히면 그녀만의 특별한 공간이 탄생한다. 시인이니까 시적인 산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산문이라고 보기엔 시에 가깝고, 시라고 보기엔 산문에 가까워서 산문시나 시산문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2부 ‘문득’에서는 그녀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들에 대한 단상이 실렸다. 연필심 끝에 침을 묻혀 그윽한 마음으로 꾹꾹 눌러쓴 지극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시론도 아니고 시인론도 아니고, 시론이면서 시인론이기도 한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그들에게 온전히 빠져있었다고 한다.

3부 ‘그윽하게’에서는 세음절로 된 제목과 그에 따른 각각의 부제가 친근하게 시적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고독한 어느 타화상의 한때’, ‘하지만,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불완전이라는 생각의 완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감성과 지성이 교직돼 있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다.

작자는 글머리에서 도무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슬쩍슬쩍 들여놓은 구절로 인해 글쓰기는 더불어 아팠고 더없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경남 남해 출생인 작가는 2004년 ‘아동문예’ 동시와 2009년 ‘시인세계’ 시로 등단, 시집으로 ‘즐거운 거짓말’과 동시집 공저 ‘구름버스 타기’가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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