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1961년 4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서 망명한 1,400여 명을 훈련시켜 쿠바에 침투시켰다.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서였다.

‘피그스 만 침공 작전’이다. 미국 정부는 1960년부터 이 침공을 계획하고 자금을 제공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소련의 훈련을 받고 무장한 쿠바군에게 격퇴됐다. 불과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100여 명이 생포됐다. 카스트로 정부는 1961년 12월 몸값으로 5,300만 달러를 받은 뒤에야 당시 사로잡은 1,100여 명을 풀어줬다. 케네디는 미군이나 그 밖의 직접적인 개입을 부정했지만 이 사건으로 미국은 쿠바에서의 주권침해행위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되었고, 쿠바와 미국 간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 사건은 결국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왜 이런 무모한 작전이 진행되었을까. 더군다나 케네디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내려진 정부의 의사결정 아닌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집단사고’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버드대 출신 미국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회의에서 내려진 결론이었다. 도저히 반대의견이 제시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그는 강력한 리더가 주도하는 집단이나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결론을 내릴 확률이 크다고 주장했다.

1986년 발생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도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당시 협력업체 기술자는 부품의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인재들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전문가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 “소수의 의견일 뿐”이라며 무시해버렸다. 조직문화의 폐쇄성, 내부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가 사고를 유발한 것이다.

어빙 재니스는 위의 두 사례처럼 의견 일치를 유도하는 경향이 지나쳐 비판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집단사고라고 정의했다.

일단 집단사고가 형성되고 나면 비윤리적인 결정도 이 집단 내에서는 정당화된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감싸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의혹에도 불구하면서다. 이미 집단사고가 형성되어 있는 듯 하다. 의혹이 크든 작든, 일어날 수 있는 일부 부작용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집단의 목표나 결과를 양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기부금 사용처 논란이 작은 일인가? 회계처리 부실은 또 어떤가? 비싸게 사서 싸게 매각한 쉼터 문제 역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사안마다 말을 바꾸고 있다. 어느 단체보다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게 시민단체이다. 몰랐다고 해서 넘어가거나 단순한 운영상의 미숙함으로 보기에는 너무 고의성이 의심되는 일들이다.

사실 집단사고는 그 집단 구성원 다수 혹은 리더의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내부적으로 얽힌 관계 혹은 그 동안 함께 해온 의리로 굳게 다져져 조직 밖의 사람들을 배척하게 된다.

어빙 재니스는 그가 펴낸 ‘집단사고의 희생자들’에서 집단의 강한 응집력과 강력한 지도자가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딱 맞는 말이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한 사람에 의존해온 시민단체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폐쇄적인 이런 조직 내에서는 개인으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할 행위들조차 죄책감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집단사고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어 안타깝다. 민주당은 의혹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윤 당선자를 옹호하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오히려 진상규명을 앞장서서 촉구하고 나서야 할 일이다. 자칫하면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애써 온 30년 활동마저 위기에 처할 수 있어서다.

기부금 운용에 대한 문제 제기를 친일프레임에 가둘 수는 없다. 불투명한 회계는 잘잘못을 따져 바로잡으면 된다. 인권운동에 앞장서온 수십년 간의 이 단체 활동성과는 지켜내야 하지 않은가. 그 지름길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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