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뜨기

최화수

꽃도 아닌 네가 열매도 아닌 네가/ 소수서원 바깥 뜰 돌확을 확, 점령해/ 여봐라! 주인 행세하네/ 이런 일은 처음이야

뿌리 채 뽑혀나가 변방만 돌던 네가/ 쇠심줄 같은 근성으로 양반가를 움키다니/ 천지가 뒤집혔구나/ 참, 당차다 네 권속

-『시조시학』(2019, 가을호)

최화수는 2011년《시조시학》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풀빛 엽서』『미완의 언약』과 동시조집 『파프리카 사우르스』와 시조선집 『바람을 땋다』(우리 시대 현대시조선 139, 고요아침) 등이 있다. 그는 시조로 등단하여 동시조집까지 출간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의욕을 보이면서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 중이다. 다소 늦은 등단은 그에게는 조금의 장애요소도 되지 못한다. 미술을 전공한 시인으로서 작품마다 색채감각이 잘 배어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남다른 언어감각으로 정서적 파동을 이미지화하는데 솜씨를 보인다.

쇠뜨기는 양치식물들로 이루어진 속새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이다. 소가 잘 뜯어 먹어 쇠뜨기라고 부르며, 포자낭이 달리기 전의 어린 생식줄기를 뱀밥이라 한다. 땅위 줄기의 두 종류 중 하나는 포자를 만드는 생식줄기이며, 다른 하나는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 영양줄기다. 영양줄기는 마디마다 많은 가지들이 달려 마치 우산을 펴놓은 것처럼 보인다. 양지바른 풀밭이나 개울가에 흔히 자란다. 양치식물인 쇠뜨기는 종자식물과 달리 씨앗이 없고 대신 포자로 번식한다. 생식줄기 끝에 육각형의 포자 잎들이 모여 뱀의 머리처럼 생긴 포자수를 이룬다. 포자 잎 밑에 포자낭이 달려 있다. 포자에는 네 개의 탄사가 있어 멀리 퍼진다.

이런 특성을 가진 쇠뜨기는 오래 전부터 적잖은 시인들이 시로 썼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큰 감흥을 주기 어렵다. 그의‘쇠뜨기’는 쇠뜨기에 대한 오랜 관찰과 숙고 끝에 나온 시편이고 굉장히 역동적이다. 꽃도 아닌 네가 열매도 아닌 네가 소수서원 바깥 뜰 돌확을 확, 점령한 채로 여봐라, 라고 주인 행세를 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기에 적이 놀라고 있다. 더구나 뿌리 채 뽑혀나가 변방만 돌던 쇠뜨기가 쇠심줄 같은 근성으로 양반가를 움킨 것이 사뭇 도발적이어서 기가 막힌 표정이다. 그래서 천지가 뒤집혔구나 참 당차다 네 권속, 이라고 쇠뜨기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한 것이다. 쇠뜨기를 이렇게 의미부여하여 아름다운 시로 빚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쇠뜨기’는 자존감을 크게 가질만하겠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점은 쇠뜨기가 냉큼 점령한 곳이다. 장소 설정이 시에서 중요한 만큼 그곳이 어딘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바로 소수서원이다. 소수서원 바깥 뜰 돌확이다. 소수서원은 최초로 국학의 제도를 본떠 선현을 제사 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한 서원이었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유학자인 안향의 사묘를 설립한 후 1543년 유생교육을 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다. 201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야말로 쇠뜨기의 돌발 행동은 소수서원의 반란, 이라 일컬어도 되겠다. 그곳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뿌리 채 뽑혀나가 변방만 떠돌던 쇠뜨기가 쇠심줄 같은 근성으로 양반가를 움켜잡은 것이다. 당찬 권속이다. 어쩌면 이러한 끈질긴 권속이 이 나라를 견인해온 힘이 아니었을까? 시인의 시각이 꽤나 예리하여 전율이 일어날 정도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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