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

▲ 대구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위치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연간 약 6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다.
▲ 대구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위치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연간 약 6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가 강제로 맺은 강화도조약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주권을 뺏기 위해 엄청난 금액의 차관을 강요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1907년 당시 1천300만 원의 부채를 떠안게 됐습니다. 그때는 1전 1원이 있던 시대라 얼마인지 감이 안 잡힐 수도 있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3천300억 원 정도 됩니다. 자랑스럽게도 국가의 빚을 갚기 위해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기부한 세계 최초의 운동이었고, 그 출발점이 바로 대구였습니다.”

나랏빚을 갚기 위해 임금부터 거지까지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쳤던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이 역사적 사건의 기록물을 만나볼 수 있는 박물관이 우리 지역에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다. 2종 박물관으로 등록된 이곳은 지하2층, 지상2층 연면적 약 1천130㎡규모로 3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1907년 서상돈 등의 제안으로 시작돼 전국적으로 확산된 국채보상운동의 나라사랑 정신을 알리고 이어가기 위해 2011년 10월5일 국비와 시비 40억 원, 시민성금 10억 원으로 건립됐다. 국채보상운동이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한두 푼씩 보탰던 것처럼 기념관 건립에도 시민의 성금이 보태졌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 제1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경제주권수호운동의 문을 열다’ 조형물은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 제1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경제주권수호운동의 문을 열다’ 조형물은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지하 1층 기념관 제1전시실 입구의 ‘경제주권수호운동의 문을 열다’라는 글귀는 국채보상운동이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구체적 내용이 담긴 안내문과 유물 전시를 통해 마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던 장소를 여행하는 것처럼 현장감을 살렸다. 특히 국채보상운동이 주창된 모습을 매직비전으로 재연한 광문사는 마치 국채보상운동이 발의된 1907년 1월29일 그 역사의 현장에 함께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전시실 성문입구 이색 조형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앉은뱅이 걸인이 구걸하는 모습이다. 대구에서 열린 국채보상단연금 모집 연설회에서 ‘걸인이 의연금을 납부하고 담뱃대를 부러트려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기사를 재연한 것이다.

기념관 관계자는 “나랏빚을 갚기 위해 여성들은 패물을 팔고 반찬값을 아껴가며 돈을 모금했고, 앵무라는 기생은 당시 한 달 월급이 15원이었는데 앉은자리에서 100원을 내놓기도 했다”면서 “도둑떼, 심지어 거지도 구걸한 돈을 모금했고 신분이나 지역, 나이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구국운동을 벌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제1전시실. 국채보상운동의 확산을 이끈 서문시장 사람들
▲ 제1전시실. 국채보상운동의 확산을 이끈 서문시장 사람들
성문을 들어서면 서문시장 상인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1893년 대구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1903년 경부선 공사기간 중 본격적으로 이주해 경제침탈에 앞장섰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시장상인들은 국채보상운동이 제창되자 이를 경제주권수호운동으로 인식하고 적극 동참했다.

1층 제2전시실은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그리고 의미와 영향을 준 사건으로 구성된다. 전시실 초입에 대한매일신보사를 재현해 놓았다. 국채보상운동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대한매일신보사 사장이었던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 선생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은 국채보상운동을 좌절시키기 위한 일제의 방해공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제의 교묘한 방해책동으로 국채보상운동은 결국 좌절됐지만 나라를 위해 뭉쳤던 이 경험은 이후에도 우리의 민중정신을 일깨워 3.1만세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나갔다.

▲ 제2전시실 국채보상운동 그 후
▲ 제2전시실 국채보상운동 그 후
국채보상운동 100년이 지난 1997년 국채보상운동이 남긴 정신적 유산은 IMF금융위기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제2의 국채보상운동인 ‘금 모으기 운동’으로 그 정신이 새롭게 발현된 것이다.

기념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체험공간이 나온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익힌 내용을 퀴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채보상운동 취지문이 새겨진 목판을 탁본하고 국채보상운동영수증에 색연필로 프로타주도해 볼 수 있다.

연간 약 6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에 자리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문의: 053-745-6753.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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