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다양한 모습의 또 다른 전태일의 이야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보여준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 50년 전 청년 전태일과 지금 우리 시대의 다양한 모습의 또 다른 전태일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강성규 지음/한티재/336쪽/1만6천 원.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전태일의 짧은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을 찾아, 그것을 지금 청년들의 삶 속에 되살렸다. 저자는 각 키워드와 연관된 전태일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를 떠받치면서도 소외받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 곳곳의 불안한 청년 노동을 1960년대 평화시장의 고통과 연결한다.

저자는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의 산재 사건,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과 그들이 남긴 생각과 땀, 꿈을 수습하기 위해 발로 뛰며 인터뷰했다. 또 그 여정에서 자신이 가르친 고등학교 졸업생들과 청년들, 그리고 대구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 현재의 삶과 노동에 대해 묻고 기록한다.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의 일환으로 기획한 이 책에서 저자는 “전태일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을 ‘현재화’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일, 밥, 집, 시간, 공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을 키워드로 전태일의 생애와 오늘 여기 청년들의 현실을 씨실과 날실로 엮었다.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전혀 다른 시야를 열어 준 전태일과 함께 한국 사회 ‘그늘의 지도’ 곳곳을 찾아나서는 길 위의 인문학.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생각과 말들의 규칙에 맞서 행복과 사랑의 공공성을 되찾으려는 아프지만 유쾌한 여정이다.

작가는 본문에서 오지랖 넓은 스물세 살 이웃 청년과 함께 세상의 그늘을 걷는 ‘다크 투어’였는데도 그와 함께 다니는 길은 유쾌하고 즐거웠다고 표현한다. 짧은 그의 삶에서 풍부한 유머와 입담, 삶에 대한 낙천성, 긍정과 배려의 에너지, 고통에 직면하는 용기를 찾아냈다. 전태일을 깊이 알게 되면서부터는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부쩍 더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자부심이 생긴다.

이 책은 ‘근로’가 아닌 ‘노동’을 말한다. 나아가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노동 인문학’을 제안한다. 삶에 새겨지는 노동의 무늬를 살피자는 것이다. 또한 성장 중심으로 ‘근로자’를 대하는 관점에서 삶을 중시하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달리 보자고 말한다. ‘노동 인문학’은 불안정한 노동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 여기, 우리, 함께
▲ 여기, 우리, 함께
◇여기, 우리, 함께/희정 지음/갈마바람/372쪽/1만7천 원.

50년 전 전태일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꿨다. 그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그때와 비교하면 노동 환경은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좋아졌다고 하지만, 어쩐지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쉬운 해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들 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지금 이 시대에도 더불어 사는 삶을 향한 전태일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오랜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들의 곁을 지키며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오랜 시간 노동 현장을 기록하는 활동을 해온 저자가 장기적인 노사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업장을 찾아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우리가 주류 언론을 통해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목소리들이다. 다양한 기업에서 다양한 이유로 노사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이 노동자를 버리면 순순히 버려져야 하는 현실에 맞서 남아 싸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강한 사람, 지독한 사람, 모자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묻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그 물음에 답이 주어지지 않기에 싸움은 길어진다.

저자는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들의 싸움이 ‘남의 일’이 될 수 없는지를 이야기한다. 가진 것 없어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고공에 올라가야 하는 이들 역시 상황이 바뀌길 바라는 사람이다.

권력은 없지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안다. 나이 든 노동자에게 그 무엇은 ‘노동자’라는 이름이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명예를 존중하는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다. 저자는 “사람들은 왜 이리 오래 싸우느냐고 묻지만, 그는 자신의 끝을 정해두었다. 돈 없고 ‘빽’ 없는, 그러나 옳다는 확신 하나는 있는 사람들이 정하는 끝이다”고 말한다.

오래도록 싸우는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한 대가로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하고 가족들과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는 삶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 달뜨기 마을
▲ 달뜨기 마을
◇달뜨기 마을/안재성 지음/목선재/320쪽/1만3천800원.

소설의 힘은 서사에 있다. 굽이치는 산의 능선, 굽이치는 강의 물결처럼 사건과 인물을 휘돌아 감으며 내달리는 서사야말로 소설의 맛이요 멋이다. 정수다. 특히나 소위 역사소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전태일 50주기 기념 안재성 소설집 ‘달뜨기 마을’은 한국 현대사 100년의 광풍과 노도처럼 굴곡졌던 역사와 노동을, 그리고 이를 지켜냈던 시대의 불꽃과도 같은 인물들을 9개의 단편 하나하나에 장중하고 감동적인 서사로 담고 있다.

그런즉 이 이야기들 속으로, 주인공들 속으로 달려 들어가 이들을 만나노라면 이들이 타관의 타인이 결코 아니다. 고향 땅 마치 내 아버지와 어머니요, 내 형제와 누이이며, 그렇게 나의 현신과도 같은 혈육임을 울컥하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피와 땀과 눈물 가득했던 이들의 삶과 고난, 아픔과 슬픔, 사랑과 투쟁과 성취를 바로 ‘오늘의 나’ 자신의 그것인 듯 뜨겁도록 안아 숨쉬게 된다.

전태일.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며 결국 자신의 몸에 불을 살라 산화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십자가와도 같은 자기희생의 지고한 존재 아닌가.

그의 이렇듯 숭엄한 죽음을 기리려 1988년 전태일문학상이 제정됐다.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온 그리고 지금은 역사인물 평전의 대가로서 우뚝 선 안재성 작가.

그가 최근 2년간 시사월간지에 연재해온 단편 중 9개를 추려 한국 현대사 100년의 연대기처럼 새롭게 엮은 소설집이 ‘달뜨기 마을’이다. 이는 2020년 올해 전태일 50주기를 기념하여 안재성 작가가 하나의 사명이요 숙명으로 세상에 내놓는 헌물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달뜨기 마을을 비롯하여 총 9편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일제강점기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9편의 이야기는 제각기 다른 연도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권’이라는 하나의 공통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1부는 일제강점기에도 소신대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며 소신보다는 생존을 찾아 민초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기 힘들던 시절 남장을 하고 서당을 다니던 이야기와 조선견직의 여공으로 노동운동을 한던 이야기. 그리고 남편은 군인에 의해서 살해되고 오빠는 인민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마지막 여맹위원장으로 생을 마무리하는 이야기까지 총 3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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