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권정생

까맣고 예쁜/ 운동화/ 몇 달째 두고두고/ 벼르셨던/ 울 아버지 읍내 장까지 가서/ 사 오신/ "학교 갈 때만 신으라"// 풋고추 두 되와/ 달걀 한 꾸러미/ 검정 고무신 두 켤레 값/ 어머닌/ "돌멩이 차지 마"// 학교 갈 때만 운동화/ 집에 있을 땐 헌 고무신// 운동화 차 -/ 고무신 차 -// 고무신과 운동화가/ 번갈아 나를 태우고 다닌다// 집에 오면/ 마루 밑에 고무신이/ 기다려 있고// 학교 갈 땐/ 운동화가 댓돌 위에서/ 떠날 준비를 한다

『동시 삼베 치마』 (문학동네, 2011)

.........................................................................................................................그때 그 시절, 짚신을 겨우 면하긴 했지만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 검정고무신과 하양고무신이 있었다. 애들은 보통 검정고무신을 신었고, 어른은 대개 하양고무신을 신었다. 하양고무신이 조금 더 고급스러워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원가가 조금 더 들어서 그랬던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하양고무신이 검정고무신보다 몇 푼 더 비쌌다. 수박서리를 하다가 들켜서 도망갈 땐 양손에 한 짝씩 잡아 쥐고 죽어라고 달려야 했다. 어린애들은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옷이나 신발을 살 경우 몇 년을 내다보고 큰 사이즈를 사곤 했다. 헐렁한 고무신을 신고 달리다간 백발백중 벗겨지기 십상이다. 돌부리에 걸리는 날엔 찢어질 게 뻔했다. 고무신도 귀해서 먼 길을 갈 땐 바닥이 닳을까봐 맨발로 걷기도 했다.

운동화는 거의 환상적인 신발이었다. 운동화는 파란 색과 하얀 색이 일반적이었다. 하얀 색을 주로 선호하는 편이었다. 조르고 졸라야, 벼루고 벼루어서 운동화를 사주셨다. 풋고추 두 되와 달걀 한 꾸러미를 팔아서 샀다. 운동화를 받아들고 끈을 한 구멍 한 구멍 끼울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새 운동화 냄새가 신선했다. 머리맡에 두고 잠을 청했다. 동무들에게 자랑할 걸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자다가 일어나 한번 만져보고,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잠을 잤다. 아버지는 학교 갈 때만 신어라고 했지만 그 말씀도 잘 듣지 않았다. 학교 갈 때도 잘 신지 않았다. 체육시간이나 운동회 때만 신었다. 생고무 바닥의 탄력으로 인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었던 것이다. 공책이나 연필을 탈 욕심으로 쓴 비장의 무기였다. 생고무의 상큼한 냄새가 발 고린내로 바뀔 때쯤이면 아끼는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긴 했다. 하지만 집에선 무조건 검정고무신으로 갈아 신었다. 학교 갈 땐 운동화, 집에 있을 땐 헌 고무신이었다. 어머니가 돌멩이 차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그 당부말씀도 필요 없는 사족에 불과했다. 운동화를 신으면 발걸음을 조신하게 한 것도 모자라 사관생도 걸음걸이로 걸었다. 발을 끌게 되면 바닥이 닳을까봐서다.

타고 다니는 차가 두 대였다. 운동화는 학교 가는 자가용 차였고, 고무신은 집에서 타는 자가용 차였다. 운동화 차와 고무신 차가 번갈아 운행했다. 운동화와 고무신을 장난감차로 변신시켜 자동차 놀이를 하곤 했다. 부르릉 부르릉 운동화 차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부릉 부릉 고무신 차가 나간다. 학교 갈 땐 운동화 차가 댓돌 위에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오라잇! 집에 오면 고무신 차가 마루 밑에서 기다리다가 쿨쿨 잠이 들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검정고무신 두 켤레 값이나 하는 운동화를 사주셨던 아버지의 따스한 마음이 한없이 그립다. 행복해하는 자식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생을 잊고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셨던 어머니의 깊디깊은 사랑을 생각하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부모님의 가없는 은혜에 흠뻑 빠져든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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