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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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시골집에 정말 오랜만에 들렀다. 창을 여니 고운 융단이 깔린 듯 온통 진홍으로 마당이 물들어 있다. 인적 없는 집에서도 나름의 노력으로 힘껏 뿌리를 뻗고 싹을 밀어 올려 봄맞이 준비를 하였던가 보다. 진분홍 꽃 잔디가 탐스럽게 피어나 울타리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주말 주택이라고 하지만 정말 가끔 들려서 마당에 잔디를 가꿀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자잘한 돌을 깔았다. 소나무 그늘 아래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자갈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마음을 씻어보리라 생각하며 위안을 하곤 하였는데 잡초들은 그 척박한 돌 마당에서도 잘도 싹을 틔워 여름이면 무성하게 덮어 버리곤 하였다. 자주 가는 꽃집에서 잡초 대적용으론 꽃 잔디만한 것이 없다고 추천하여 몇 년 전에 한 상자 가져다가 심어두었다. 흙만 조금 파서 뿌리를 꽂아 두고는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뿌리를 내렸던가. 마당을 온통 진분홍의 황홀한 꽃밭으로 만들어 인기척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온다.

봄이 언제 왔는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 같던 올해였지 않은가. 벌써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여름을 실감하게 한다. 정말 꿈이었으면 좋을 시간이었다. 코로나19 ,하루에도 수백 명씩 발생하던 때, 입원 대기 중 사망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보다 못한 대구시의사회가 나섰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낼 수 있는 의사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전화 모니터링을 시작하자고. 죽음의 공포에 있는 이들에게 불안한 마음을 전화로라도 상담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일 백 육십여 명의 의사가 순식간에 자원하였다. 전화기 너머로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불안해할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면 곧 병원이나 생활 치료센터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 달래주었다. 아이들 아플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열이 치솟고 먹지 못해 보채고, 밤이면 늘어져서 할딱대는 자식, 그 부모의 흐느낌에 얼른 긴급 입원일 필요함을 핫라인에 알리곤 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연결된 이들이 이젠 거꾸로 안부를 물어온다. 화장실 하나 딸린 작은 집에 살면서 중학생 아들을 키우던 어느 가장은 중2병이 코로나를 이기는 데는 제격인 것 같다고 웃었다. 방에 틀어박혀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완벽한 격리 생활 실천이라고 하면서. 다른 식구는 그나마 밥도 같이 먹다 보니 딸에게서 엄마에게로 또 아빠에게로 코로나19가 스며들어버렸다면서 후회하고는 아들이 걱정이라고 하였다. 중학생 아들은 다른 식구들 격리 해제를 위한 검사에서도 완벽하게 음성을 유지하고 있었단다. 코로나19 시대의 명언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하고 하던가. 그보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이 있다. 세 가지 밀(密,) 자가 들어가는 것, 바로 밀폐, 밀접, 밀착의 세 가지다. 코로나 시대에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지만, 꼭 피해야 할 3밀을 기억해야 하리라.

코로나19, 지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00일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그 그늘에 있는 이들이 아직 많다. 2월에 딸이 처음 코로나19라는 진단을 접한 한 할아버지는 날마다 한숨이다. 생활 치료센터에 입소하여 치료를 다 받고 퇴원한 딸이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고, 할아버지 차지가 된 어린 손자와 손녀와 거동에 장애가 있는 아내까지 뒷바라지하느라 세월이 너무 더디 간다고 전한다. 자가 격리 생활한 지도 벌써 여러 달이라 집에는 아쉬운 것이 한둘 아니라면서 한숨 쉰다. 아무 증상도 없이 검사만 하면 양성으로 계속 나오니 정말 팔짝 뛸 노릇이라고. 칭얼대는 손자 손녀를 안고 먹여주고 씻겨주고 배우자의 수발까지 들고 있는 자신은 계속 음성이니 세상에 이런 병이 어디 있느냐며 역정을 내신다. 차라리 자신도 양성이라도 되면 함께 입원이라도 할 것인데, 이럴 때는 정말 음성이란 글자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인 것 같다고 하신다. 일주일마다 한 검사에서 마지막엔 손자만 양성이고 모두 음성이 나왔다고 이제는 끝이 보이는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나도 내심 기다렸는데 다시 힘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전화하셨다. 이제 나만 빼고 모두 양성 나왔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말이다. 아이들이 자꾸 양성과 음성을 반복하니 입원해 빨리 치료하고 나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신다. 기진맥진한 그 목소리를 듣고 입원 자리를 알아보았다. 이모가 질녀를 데리고 입원하고 양성인 외삼촌이 조카를 데리고 입원하였다. 입원 채 일주일이 안 되어 손녀가 음성이 되어 퇴원하게 되자 오랜만에 웃음 띤 목소리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가 물러난 뒤엔 더 배려하고 더욱 감사하며 인정이 넘치기를 순수한 세상을 기대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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