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조

이문열

~인본주의냐, 유미주의냐~

…고죽은 묵향을 맡으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열 살 때, 고죽은 서화가 석담에게 맡겨진다. 석담은 그를 맡아 기르긴 하나 오랫동안 무관심으로 방임한다. 고죽은 어깨너머로 서예를 익힌다. 석담은 우연히 그의 글씨를 보고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러고도 석담은 여전히 가르침에 인색하다. 스물일곱 때, 그는 반발심과 자만심으로 집을 뛰쳐나간다.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는 등 서예 실력을 인정받는다. 석 달 후, 곡식을 한 짐 지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나 석담은 의외로 냉담하다. 곡식과 필낭을 불태우고, 2년 동안 붓을 잡지 못하게 한다. 석담은 ‘금시벽해(金翅劈海) 향상도하(香象渡河)’란 글씨를 써준다. 재예에 치우치는 걸 경계하란 의미다. 이에 아랑곳없이 고죽은 절차탁마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예술관이 상이한 두 사람은 평행선을 달린다. ‘도’(道)를 앞세우는 석담의 유교적 인본주의와 ‘예’(藝) 그 자체에 독립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고죽의 예술지상주의가 격돌한다. 격노한 석담은 고죽에게 벼루를 던지고 파문한다. 서른여섯 때, 그는 다시 집을 나온다. 서예로 얻은 명성에 기대어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며 자만과 쾌락으로 허송한다. 우연히 절간 벽에 걸린 금시조(金翅鳥)를 보고 고죽은 ‘금시벽해’란 글귀의 참뜻을 깨닫는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오나 석담은 이미 불귀의 객이 된다. 관의 명정을 쓰라는 석담의 유언을 전해 듣는다. 석담이 고죽을 수제자로 사사한다는 뜻. 힘든 시련의 과정이었다. 죽음을 예감한 고죽은 자신의 작품을 회수한다. 회수한 작품들을 엄격하게 평가하여 명품을 찾아내려 한다. 허나, 천의무봉의 명품은 하나도 없다. 그는 애써 회수한 작품들을 모두 불사른다. 그 불길 속에서 금시조의 금빛 날개와 힘찬 비상을 본다. 고죽은 그날 밤 눈을 감는다.…

스승은 ‘문자향’과 ‘서권기’, 굳센 힘이나 투철한 기세 같은 선비적 이념미를 강조한다. 제자는 예술의 독립성을 신봉하며 유미적 예술세계를 추구한다. 두 대가의 경쟁과 갈등관계를 회고의 형식으로 묘파한다. 수련과 정진을 거듭한 끝에 깨달음을 얻은 제자 고죽은 정상에서 스승 석담의 정신과 조우한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다양한 법이다. 정상엔 금시조가 기다린다.

예술논쟁은 고루한 감이 든다. 종교와 학문에 대한 종속적 도구 내지 수련의 성과로 예술을 보던 시각에서 예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본 시도는 르네상스에서 싹튼다. 신화와 성서의 일화를 전달하던 도구개념에서 그 자체 독립적으로 홀로 선 과정은 긴 여정이었다. 일찍이 최북이 그런 시도를 했으나 찻잔의 태풍에 불과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탐색과 천착, 예술적 완성을 위한 헌신은 실로 장엄하다.

석담은 고죽을 시종일관 경계한다. 일찌감치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지만 방치한다. 석담은 천한 재예를 탓하지만 다른 상상도 가능하다. 대가로서 고수의 방어본능이 발동한 건지 모른다. 자신을 능가하는 천부적 자질을 발견하고 그 콤플렉스로 인해 괴로워했을 수 있다. 호랑이 새끼에 대한 위험부담이 방임으로 나타난 셈이다. 석담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대가일수록 병적인 집착과 황소고집은 기본이고, 자존감과 자부심이 유난스러우며, 지나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다. 이 천박한 상상을 시기와 질투로 여겨 외면하기엔 미련이 남는다.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점이 있다. 죽음에 임해 고죽을 수제자로 점지하는 석담은 외려 인간적이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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