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바닷물이 스르르 흘러 들어와/ 나를 몇 개의 섬으로 만든다./ 가라앉혀라,/ 내게 와 죄짓지 않고 마을을 이룬 자들도/ 이유없이 뿔뿔이 떠나가거든/ 시커먼 삼각파도를 치고/ 수평선 하나 걸리지 않게 흘러가거라,/ 흘러가거라, 모든 섬에서/ 막배가 끊어진다.” 신대철 시인의 ‘무인도를 위하여’를 서가에서 찾아내 다시 읽었다. 문청 시절 이 시를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시집 출간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 시를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전혀 이해가 안 되고 느낌이 와 닿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시는 내가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매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의 심적 상태에 따라 생성, 고립, 단절, 자유, 방랑, 추방, 반자연, 자연과의 화해 등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읽을 때마다 항상 낯설면서도 친숙하다. 그러면서도 생명력이 느껴진다. 낯설기 때문에, 천의 얼굴로 다가오기 때문에 좋은 시다.

21대 총선 이후 이 시를 다시 읽었다. ‘섬’ ‘가라앉혀라’ ‘뿔뿔이 떠나가거든’ ‘흘러가거라’ ‘막배가 끊어진다’ 이런 시어들이 불현듯 대구경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며 이런 상황을 연상한다는 사실을 시인이 안 다면 몹시 당황하거나 불쾌할지 모르겠다. 어쩌겠나.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든 개입할 수가 없다.

21대 총선을 두고 보면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고립된 섬이다. 악의적으로 이 지역을 비방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섬을 두고 온갖 험담과 악담을 퍼붓고 있다. 이 섬의 주민들 역시 황당하고 답답하다. 자신의 선택이 비난받게 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존감의 손상과 낭패감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19와 총선을 거치면서 대구경북이라는 이 섬은 다른 지역보다 더욱 심각한 생존의 어려움까지 겪게 되었다.

여러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대구경북 사람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대구 사람들은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타 지역에서 열리는 회의, 모임 등에는 자발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주최 측이 먼저 오지 말라고 연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역민들은 그런 말들을 문제 삼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가족 행사조차도 알아서 참석하지 않았다. 중소개인 사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수주한 공사를 하기 위에 타 지역에 간다고 하면 대구업체이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미안하지만 함께 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해고 통보를 받고 있다. 생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실업급여와 고용유지 지원금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모두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차가운 바다 위에 막막하게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이다. 중앙정부와 대구시는 명분싸움과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끌지 말고 이들의 긴급구조 신호에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21대 총선 이후 지역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다 심리적인 박탈감, 고립감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지역의 정재계, 학계, 언론계 등은 지역민의 심리 상태와 지역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며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과 기관이 앞장서서 “내가 찍고 싶은 사람과 정당을 찍고, 내 신념을 표현했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나, 그렇다면 대구경북보다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한 타 지역은 왜 비난하지 않는가.”등의 말로 맞서려고 해서도 안 된다.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는 국가발전에 같은 비중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지역의 보수는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 타인의 지적과 말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객관화 작업도 동시에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고립될 것이다.

섬은 건강한 생태를 유지하면서 산수와 풍광이 타 지역과는 구별되고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가질 때 돋보이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게 된다. 섬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때로 섬 밖에서 섬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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