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공동칼럼…코로나 사태로 전세계가 한국을 주시하는 이면에는

이명훈

소설가

세계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요즘 의료체계가 공적으로 비교적 잘 되어 있고 국민들이 질서를 제법 잘 지키는 것 뿐인데 전세계의 느닷없는 주목이 의아하기도 하다. 세계가 이렇게 나약했던가. 가벼운 조소마저 인다.

팬데믹이 지속될 경우 혹 사재기 같은 행위로 질서가 무너지면 어렵게 일궈진 이 위상이 실추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질서가 무질서보다 개인적으로도 유리하다는 집단적인 합의가 생겨나는 듯하다. 말을 바꾸면 공공선이 이기심에도 유리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는 데는 깊은 것이 숨어 있어 보인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개인이 이기적으로 살면 전체는 효율적으로 잘 돌아간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아담 스미스는 윤리 역시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에 바탕을 둔 고전주의 경제학은 보이지 않는 손을 중시하며 은근히 절대화시킨다. 그렇게 패여진 수로에 세계가 익숙한 나머지 그게 당연하다는 집단 체면에 빠져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방식이 이번 사태를 더 키운 면도 있다. 익숙한 방식이라 제어도 잘 안되는 듯 하다. 그런 세계가 한국을 새롭게 보는 것이다. 한국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 아래의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그 파악까지 내려서는 게 중요하다. 공공선, 윤리, 그 가치들과 어우러지는 정서 등이 아닐까?

그동안 익숙한 이기심의 논리 궤도에서 이탈해 새로운 방식으로 한 사회가 돌아갈 때 사회의 회복이 효과적이란 사실. 그에 대한 깨달음이 소중하다. 그런 깨달음이 집단지성의 수레를 타고 돌면서 이기심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의 위험과 폐단에 대한 비판, 반성이 수반되면서 공공선이 새롭게 부각되고 그에 입각한 세계 질서가 이룩되는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의 지금 질서와 정서가 그 모티프가 된다면.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해 통제가 더욱 강해져 빅 브라더 사회가 될 가능성, 자율적 시민 역량이 더욱 증대하는 사회가 될 가능, 그 양극 사이 선택의 기로에 인류가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3.0이라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뿌리부터 뒤흔들려 자본주의 4.0 체제로 이행하리라는 또다른 논객의 글도 있다. 그 외에도 무수한 견해들이 팬데믹이 강해지는 요즈음 전세계에서 쏟아질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해석에 성찰의 눈을 돌리는 것도 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될 것 같다. 이기심을 과대 평가한 것이 자본주의라면 이기심을 과소 평가한 것이 사회주의이다.

냉전까지 세계는 그 두 이념 및 제도 간에 극렬한 파워 게임을 벌였다. 구소련 해체 이후 자본주의의 승리, 그 뒤를 이은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아 오늘까지 이른다. 소수의 인간을 위해 지구의 모든 것들을 수단화한 것이 그 흐름의 핵심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로 인해 지구엔 엄청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것들의 연쇄 속에서 코로나 19가 터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국제간 벽을 넘어 개인 개인에게 치명적인 공포로 와닿는 코로나 정국. 그속에서 세계 시민들은 왜 한국을 주시하는 걸까? 이기심이 당연하다는 세계관으로 인해 추방되다시피한 공공선에 대한 갈망과 요청. 그것이 세계 시민들의 제도화되고 길들여진 마음의 심층을 흔든 것은 아닐까? 지주로 삼은 것들이 뒤흔들림과 동시에 마음 속에 생겨난 공허와 결여, 결코 제도화될 수 없는 무의식적 욕망이 자극된 것은 아닐까?

그 말이 맞다면 둔탁한 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한 마음의 길에 걸맞는 훌륭한 옷을 입히는 것이 바람직한 길일 것이다. 그 방향의 모색 및 성취가 코로나19가 주는 세계사적, 문명사적 교훈의 하나로 보인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