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

흰 비닐봉지 하나/ 담벼락에 달라붙어 춤을 추고 있다/ 죽었는가 하면 살아나고/ 떠올랐는가 싶으면 가라앉는다/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가 따로/ 춤추는 것 같다/ 제 그림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것이/ 지금 춤추고 있다 죽도록 얻어맞고/ 엎어져 있다가 히히 고개 드는 바보/ 허공에 힘껏 내지르는 발길질 같다/ 저 혼자서는 저를 들어낼 수 없는/ 공기가 춤을 추는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 드러내는 한숨처럼/ 돌이 있어야 물살을 만드는 시냇물처럼/ 몸 없는 것들이 서로 기대어/ 춤추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를 할퀴는/ 사랑이여 불안이여/ 오, 내 머릿속/ 헛것의 춤

『그 겨울 나는 북벽에 살았다』 (문학동네, 2013)

................................................................................................................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려 귀신처럼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을씨년스럽고 볼썽사납다. 이는 문화인의 자존심을 저격하는 치명적인 장면이다. 그런 까닭에 감추고 싶은 치부를 본 듯 눈을 돌리고 만다.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흉하다. 흰 비닐봉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색감이 주는 편견이나 선입감은 비닐봉지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시인은 흰 비닐봉지 하나가 바람에 흩날리다가 담벼락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요동치는 모습을 포착한다. 바람이 잦아들면 담벼락 아래로 처지다가 바람이 불면 다시 위로 치솟아 오른다. 바람이 봉지 안에 갇혀 부풀어 오르다가 바람이 빠지면 쭈그러든다. 바람은 비닐봉지를 죽이기도 하고 살려내기도 한다. 춤추는 사람의 그림자를 따로 떼 논 것 같다. 템포가 빨라지면 스텝은 예측불허 천방지축으로 현란히 움직이다가 느려지면 숨을 죽이고 멈춰 선다.

흰 비닐봉지는 반투명이라 그림자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그림자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죽도록 얻어맞고 엎어져 있다가 쓸개 빠진 사람처럼 히죽거리며 고개를 드는 바보와 진 배 없다. 갑작스레 허공으로 치솟는 모습은 허공에 힘껏 내지르는 발길질 같다. 바람에 홀린 꼭두각시처럼 미친 듯 춤추는 모습은 밉상이지만 한편 생각하면 측은하다. 혼자서는 존재조차 드러내지 못할 뿐더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춤추는 공기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한숨이 소리로 인해 존재를 드러내고 시냇물은 돌로 인해 물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공기는 흰 비닐봉지의 도움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 춤춘다. 몸도 없는 것들이 서로 의지하여 그 존재를 알린다. 바람과 공기는 흰 비닐봉지를 통해 비로소 그 존재와 의미를 표출한다. 사랑과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상처를 입힌다. 자신을 옭아매는 사랑과 불안도 알고 보면 헛된 기운이 일어났다 스러지는 현상에 다름 아니다. 공기와 바람에 휘둘리는 흰 비닐봉지와 같은, 허망한 춤일 뿐이다. 흰 비닐봉지는 영혼의 은유다.

머릿속엔 셀 수 없이 많은 복잡한 상념과 감정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일어난다. 헛것들이 서로 의지하고 기댄 채 백팔번뇌로 살아나 삶을 할퀸다. 온갖 생각과 느낌이 눈빛과 몸짓을 통해 노정된다. 인간의 삶은 그러한 노정의 적분이다. 인생살이는 담벼락에 갇혀서 바람의 장단에 맞춰 춤추는 흰 비닐봉지와 같다. 담벼락이란 무대에서 사랑과 미움, 사단과 칠정이 춤춘다. 실체도 없는 헛것들의 춤추는 무대가 생로병사로 얼룩진 삶이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고, 꿈은 허망하다. 헛된 꼭두각시놀음에 홀리지 않고 인생의 참모습을 관조하는 시인의 내공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