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21대 총선이 열흘 지났다. 여당의 압승이고 보수 야당의 참패다. 당연한 결과지만 야당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 야당을 절대 지지했던 TK(대구·경북)도 허탈감과 무기력감에 빠졌다.

보수의 패인을 두고 백가쟁명식 분석이 난무한다. 하지만 여야의 득표율을 따져보면 보수 야당의 참패가 아니라는 분석이 의미 깊다. 보수는 통합당의 참패를 인정하고 자유 우파의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선거후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강경 보수와 유튜버를 중심으로 한 ‘사전선거 조작설’에 대해 보수 진영조차 고개를 흔든다.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제 그만하자. ‘낡은 보수’에 끌려가는 모습 바꿔야 한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의 TK 싹쓸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하지만 TK가 통합당에 표를 몰아주었지만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역대 어느 선거보다 많은 지지표를 던졌다. 한 친노 시인은 4·15총선 결과와 관련, “대구는 독립해 일본으로 가라”는 지역 혐오 글로 지역민들을 분노케 했다. 하지만 TK의 통합당 지지 보다는 호남의 민주당 지지 비율이 훨씬 높다.

TK 마저 무너졌다면 개헌선이 붕괴됐을 것이라고 한다. 보수는 설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통합당이 당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TK 홀대론이 나온다. 통합당은 실컷 이용만 해놓고 TK를 부담스러워한다. 당연히 TK의 역할을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TK는 떳떳이 권리를 주장하고 챙겨라.

-총선과 코로나, 탄핵과 열등의식의 강 넘어

총선 참패가 결코 나쁜 결과만은 아니다. 보수는 이번 총선에서 의외의 소득을 거뒀다. 보수 야당의 원죄로 치부되던 탄핵의 강을 건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후 따라다녔던 꼬리표를 떼냈다. 친박, 친이의 계파 문제도 정리됐다. 극렬 지지층이면서도 외연 확대에 걸림돌이 됐던 태극기부대와도 결별했다. 조원진의 우리공화당과 김문수, 전광훈 목사의 기독자유통일당, 홍문종의 친박신당은 한 석도 못 얻었다. 박근혜 망령도 함께 날아갔다.

보수는 촛불시위와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화의 방관자 내지는 반민주화의 동조세력이었다는 부채 의식과도 결별했다. 경원시했던 운동권도 별것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선진화된 국민 의식과 고도의 방역 수준, 세계 최고의 보건 의료 시스템, 진단 키트와 마스크 등 탄탄한 제조업 기반의 저력을 확인했다. 스스로도 몰랐던 우리의 힘을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에서 먼저 인정해 주었다. 오롯이 국민의 힘이다. 한국이 이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 세계 리더 그룹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외국 언론들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칭찬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역사 이래 대한민국의 국격이 이만큼 올라간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마저 그들의 눈에는 경이의 대상이다.

한국은 명실공히 선진국이자, 일류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 몇 년 동안 경제 침체로 큰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코로나가 전화위복이 됐다. 우러러보던 미국과 일본조차 이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과거에 발목 잡혀 뒷걸음질 치지 않아야

이제 보수는 5·18과 세월호의 강을 건너는 일만 남았다. 보수는 박근혜 탄핵의 강을 건너듯 5·18과 세월호의 강을 넘어서야 한다. 이미 5·18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개념을 정립하며 국가 차원에서 정리됐다. 관련자들의 입만 조심하면 될 일이다. 세월호 망언이 4·15선거 막판 판세를 흔들었다. 세월호 문제는 정부의 처리에 맡겨두면 된다. 괜히 밤 놔라 대추 놔라 할 필요 없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발목 잡혀 뒷걸음질 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보수는 조국이 말아먹은 공정과 정의를 원래 자리로 되돌리고 보수의 가치를 살리는 미래설계를 고민하라. 과거 유산은 21대 총선, 코로나와 함께 털어버려라. 이제 더이상 꼰대는 없다. 사사건건 정부 발목만 잡는 정당도 없다. 노무현이 이루려고 했던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가는 일만 남았다.

지겹기 한정 없던 코로나의 기나긴 터널도 이제 끝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험준한 산도 깊은 강도 건녔다. 518과 세월호의 강을 넘어 미래로 가자.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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