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겨우 피어난 참꽃들이 그만 떨어져 버릴까 안쓰러운 날이다. 건조한 대기로 인근 지역에 큰 산불이 나서 산야를 엄청나게 태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간이 지나자 잦아들고 있다는 소식에 잠시 안도하였더니 저녁에 다시 거세게 타올라 주민대피령이 내렸다고 한다. 불이 난 지역에 사는 지인이 며칠 전 쿠킹 박스를 보낸다고 연락했다. 날마다 코로나19로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다닐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면서 입맛 살리는 것을 보낸다고 하더니, 산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불 맛 나는 얼큰한 음식으로 입맛을 찾으라고 하다니. 대피하느라 정신없을 그를 떠올리니 나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산불 소식에 마음이 잡히지 않아 서성이는데 택배 상자를 문 앞에 두고 간다는 택배회사 직원의 문자가 사진과 함께 도착하였다. 대문을 열어보니 침이 고이는 맛난 음식, 마라탕 쿠킹 박스가 얌전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편리하기 그지없는 간편한 요리용 재료 박스였다. 박스를 오픈하여 재료를 꺼내어 달궈진 팬에 차례차례 넣어서 끓이고 좋아하는 것을 첨가하여 먹기만 하면 되는 요리, 참으로 편한 세상이다.

2020년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가 편리미엄이라고 하지 않던가. 편리미엄은 편리함과 프리미엄을 합친 말로 편리함이 곧 프리미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노동과 부족한 개인 시간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편리함을 소비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며 편리미엄 트렌드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편리미엄 외식은 간편식의 고급화와 프리미엄 음식 배달 서비스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2020년 외식 경향 트렌드 전망을 발표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시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편리미엄 트렌드와 함께 집안일도 외주화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신용카드회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사 관련 서비스 결제 건수가 몇 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퇴근 후나 주말에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개인 시간을 누리기 위한 욕망이 반영된 것이지 않겠는가. 특히 배송 관련 서비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실행에 따라 새벽 배송을 비롯해 다양한 택배 서비스 이용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물류 업체들이 크게 상승세를 보인다. 코로나19가 물러난 이후에도 세계는 이전과 같이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그래서 편리미엄은 온라인 커머스 발달과 비대면 서비스 선호로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편리함을 앞세운 의류 관리기, 에어 프라이어, 식기 세척기, 로봇청소기, 전기레인지. 쿠킹 박스 등 다양한 편리미엄 아이템들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하여 18배나 증가하였다고 하니 상상 그 이상의 소비트렌드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몇 년째 꾸준히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의류 관리기’는 10배, 로봇청소기는 3.4배의 매출이 늘었고, 가스가 나오지 않아서 실내 공기 질에 도움을 주는 ‘전기레인지’는 2.3배, 기름 없이 조리가 가능해서 건강과 편의성을 함께 잡은 ‘에어프라이어’도 1.5배나 매출이 증가하였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

이들 가전 중의 하나 이상 사용해본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써보고 나면 그 편리함에 비용은 그만 생각하고 싶어진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줄여주는 편리한 이기로 인해 그만큼 다른 곳에 할애할 여유를 얻으니 그것만으로도 위안 삼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현재 우리의 생활에는 편리미엄을 토대로 한 생활제품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됨으로써 편리미엄 제품을 더 찾게 되는 현상이 이어지는 것 같다. 손으로 씻는 식기들도 뜨거운 물로 씻고 헹구는 식기세척기를 쓰고 나면 무엇인가 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소독될 것 같아 전기세 걱정되어도 요즈음엔 자주 돌린다는 이들이 늘어간다. 가능하면 가사부담을 줄이고 그 시간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요즘처럼 집 안에만 머물러 따분한 생활환경에서는 그나마 힐링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웃어른들의 관점에서 세상의 삼신은 삼신(三神)할머니가 아니었을까.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아이의 출산과 수명과 질병 등을 관장하는 이가 바로 삼신할머니라고 여기며 며느리의 출산을 쉽게 해 달라고 정한 수 떠 놓고 두 손 모아 빌어주지 않았던가. 요즘 삼신은 그 삼신할머니가 아니라 가전 삼신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가사 노동을 줄여주는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를 삼신(三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생활 속에서 원하는 세 가지 편리미엄은 삼신할머니 아닌 바로 가전 삼신이 가져다줄지도 모르니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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