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심인자

햇살이 앵두처럼 붉어진 오후 세 시요양원 벤치에 나란히 손잡은 모녀극세사 잠옷바지에 이름 새겨 넣는다

자꾸만 오그라지는 바지춤 서로 당기며오당실오당실 덧칠하고 눌러쓰는 이름 석 자-함 보자 매매 써 놨제이름도 도망간데이

합죽한 입가엔 가느다란 깨꽃 웃음-안 죽어서 큰일이다 얼른 죽어야 편한데-오당실 딸 오래 할라요 나 고아 만들지 마요

툭툭 이어지는 대화 오래 살아 미안하다고이 핑계 저 핑계로 자주 못 와 미안하다고마음껏 펴지 못한 마음 눈빛으로 이운다

-『서정과현실』(2019,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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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는 경남 진주 출생으로 2012년 오누이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거기, 너』와 공저 『경상도 우리 탯말』등이 있다. 특히 그는 탯말 연구에 일가견이 있고 작품 속에 입말을 잘 살려 써서 감동을 더한다. 이러한 감칠 맛 나는 토속적인 언어 구사는 문학의 효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의 시편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직업이 노출된다. 관찰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 함께 하는 자리에 있다.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그에게 그 일은 직업이라기보다 하나의 사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힘들지만 기쁨과 보람으로 감당하기 때문이다.

때는 햇살이 앵두처럼 붉어진 오후 세 시 무렵이다. 요양원 벤치에 앉아 나란히 손잡은 모녀가 극세사 잠옷바지에 이름을 새겨 넣는 일을 하고 있다. 자꾸만 오그라지는 바지춤을 서로 당기며 오당실오당실 덧칠하고 눌러쓰는 이름 석 자를 두고 함 보자 매매 써 놨제, 이름도 도망간데이, 라고 말한다. 이름도 도망간다는 대목에서 묘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합죽한 입가엔 가느다란 깨꽃 웃음이 가득하고 안 죽어서 큰일이다 얼른 죽어야 편한데, 라고 어머니는 혼잣말을 하는데 딸은 오당실 딸 오래 하겠다면서 고아 만들지 말기를 간절히 청한다.

툭툭 이어지는 대화 가운데 오래 살아 미안하다고 어머니는 연해 말하고 딸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주 못 와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마음껏 펴지 못한 마음 은 눈빛으로 이울고 만다. 이런 정황은 요양원 어느 곳에서나 요즘 비일비재하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것이다. 요양원은 인생의 종착지다. 참으로 서글프지만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한다.

그는 ‘나는 꿈치예요’라는 시조에서 야금야금 기억을 도난당하고 몰래 들어와 지금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병을 두고 주변이 무너지고 곁 사람이 더 아픈 상황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병, 꿈꾸는 병이라고는 하지만 진실로 꿈이기를 바란다. 피붙이도 잊어버리고 늘 문 앞을 도돌이하며 하릴없이 배회하기 때문이다. 일몰의 불안감은 쑤시뭉티로 들러붙고 갈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 끊긴 뇌 속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운전대를 놓쳐버린 것이다. 제목에 나오는 꿈치는 치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순화시키기 위해 시인이 붙인 새 낱말이다. 쑤시뭉티란 말은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듣는 수세미처럼 엉키다, 라는 뜻의 탯말이다.

‘이심전심’은 어떤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지만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로병사의 길을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기에 죽음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할 것이다.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종언에 이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제도도 잘 마련되어야 하고 개인이나 가족이 이에 대한 바른 인식과 적절한 대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이심전심’을 읽으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야 하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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