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우라지 고사목

구애영

누가 이 고사목에 주석을 달 수 있을까/ 바람의 고랭지에서 온몸을 녹이고 있다/ 제 안을 텅 비워놓은 청령포의 비문인 듯

한때는 새들의 노래 곁가지에 새겨놓고/ 그래서 스스로의 감정 그늘에 드리웠을까/ 더 이상 쓸쓸할 일 없는, 볕뉘 한줌 얹혀 있다

통증 같은 망국의 시간 눈을 감고 따라가면/ 가만히 얼굴 포개준 편운이 내려올 듯/ 오롯한 직립을 버려 수평이 된 별책이여

-『시조시학』(201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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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영은 2010년 시조시학,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모서리 이미지』『호루라기 둥근 소리』등이 있다. ‘정선 아우라지 고사목’은 중후한 시편이다. 깊이 있는 사유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높은 산에 오르면 이따금 고사목과 만나게 된다. 여러 곳으로 견고하게 가지를 뻗은 나무는 한 그루의 예술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 나무가 숨을 거두었을까. 그런 안타까움이 크다. 벋은 가지 모양이 하도나 미묘하여 그대로 그림이 되고 그대로 조소가 되는 나무이건만 숨 멎은 지 오래여서 이젠 무슨 말을 건네도 바람만 들을 뿐이요, 구름만 알 뿐이다.

화자는 누가 이 고사목에 주석을 달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바람의 고랭지에서 온몸을 녹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치 제 안을 텅 비워놓은 청령포의 비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때는 새들의 노래를 곁가지에 새겨놓고 스스로의 감정을 그늘에 드리웠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더 이상 쓸쓸할 일 없는 볕뉘 한줌 얹혀 있는 고사목이다. 통증 같은 망국의 시간 눈을 감고 따라 가다보면 가만히 얼굴 포개준 편운이 내려온다. 오롯한 직립을 버려 수평이 된 별책에 대한 소회로 끝맺고 있다. 별책이여, 라는 감탄조로 마무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사목에서 주석과 별책을 떠올린 점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고사목이 아니다. 정선 아우라지 고사목이다. 문학적 상상력이 발동하는 곳이 정선 아우라지가 아닌가. 더구나 청령포의 비문과 통증 같은 망국의 시간에서 보듯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고사목이되 역사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하여 고사목은 아픈 역사의 한 상징물로도 읽힌다. ‘정선 아우라지 고사목’이 중후한 느낌을 안겨주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또 ‘난전이어도 좋은 꽃밭’에서 공터 맨드라미가 닭 벼슬처럼 서 있다고 말하면서 그로부터 꽃술 전부의 사유가 환히 터졌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세가 표표하더라도 화살이자 과녁이라고 살핀 점도 눈길을 끈다. 또한 잠행하던 기억 속에서 내 귓불처럼 붉혔으리라는 유추도 그렇고 난전이어도 좋은 꽃밭, 바람소리 못 알아듣는 아직도 끓어오르는 신열을 철없이 허공에 거는 일도 그러하다. 이렇듯 ‘난전이어도 좋은 꽃밭’은 비범한 착상과 언어 운용으로 시의 맛을 한껏 고양시킨다.

시를 쓰는 이라면 누구나 절창을 남기고 싶어 한다. 언제쯤 맞닥뜨리게 될까 생각하면서 노트를 펼친다. 언젠가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현상이나 정경을 유의미한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어떤 새로운 느낌은 다가온다. 순간 포착이다. 놓치지 않고 잡아채어 옮겨 적은 다음 속으로 궁굴리기를 거듭하다가 보면 한 편의 시는 탄생한다.

왜 시인들은 이토록 시와 씨름하는 일에 온 힘을 다 쏟는가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애영 시인처럼 시 창작에 일생을 건 이는 시 쓰기의 고통과 더불어 그 즐거움을 안다. 삶의 동력이 곧 시이기에 오늘도 꽃그늘 아래서 한 편의 시를 구상하며 사색에 잠긴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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