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말로 신뢰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논어의 ‘안연편’에 실려 있는 공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라고 답했다. 백성을 충분히 먹일 만한 풍족한 식량인 경제력(足食)과 백성들을 보호할 만한 충분한 군사력(足兵), 그리고 백성들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의 근본이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이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이 먼저냐고 묻자 공자는 ‘병(兵)’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자공이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부득이하게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묻자 공자는 ‘식(食)’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만일 백성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면 그 나라는 서지 못한다(無信不立)”고 했다.

공자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신뢰를 더 중시했다. 한 나라의 근간을 받쳐주는 큰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굳이 수천년 전의 공자의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치가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들은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지금 현실의 세태를 지켜보면 공자의 무신불립이 더욱 그립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과 눈속임, 거기에다 수많은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정치 아닌가. 거기다 툭하면 터져나오는 막말과 말실수로 이젠 신뢰를 회복하는 것조차도 어려워 보인다.

신뢰가 무너지는 큰 요인 중의 하나는 가짜뉴스이다.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사이버상 선거법 위반행위 자료를 살펴볼 만하다. 이 자료를 보면 선거일 D-6일 기준 온라인 선거운동에서 적발된 건수는 지난 20대 총선 1만4천736건보다 3배 이상 많은 4만8천335건에 달했다.

이 중 상당수가 가짜뉴스로 인한 것들이다. 최근 정치권의 유튜브 열풍이 이같은 사이버상 선거법 위반행위에 한몫을 한 것이란 지적이 많다. 특히 이번 총선 기간 동안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대 화두였다. 대면 선거운동이 줄면서 온라인 선거운동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바람에 가짜뉴스에 대한 유혹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선거를 앞두고 이어지고 있는 막말과 말실수도 신뢰할 수 없는 정치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막말로 한번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서다.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도 아쉬울 판인데 막말이 이마저도 깎아먹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이 총선이다. 꼼수와 가짜뉴스, 막말이 난무해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신뢰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이나 말바꾸기 같은 행태를 보면 국민들로부터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국가적인 위기상황인 코로나19마저 선거전략에 활용하려 하고 있는 판이다. 거기에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국민들은 상대 진영의 말은 무조건 신뢰하지 않고 본다.

이젠 그러려니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막상 누구를 찍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할 수도 없다. 신뢰할 수 없다고 정치를 외면하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뿐이다. 선거 때면 하는 말이지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고, 차선조차 없다면 최악이라도 피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믿을 수 없는 정치’라고 푸념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지금 문제는 여야 할 것 없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쌓아올리기 어렵지만 한번 뿌리내린 신뢰는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이젠 말과 행동으로 정치부터 믿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꾸준하게 보여주어야만 가능하다. 정치의 신뢰회복이란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백성들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공자의 무신불립이 그립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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