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정이현

~이름 없는 한 영혼을 위한 진혼곡~

…‘나’는 강남에서 자랐다. 대학생이 되었으나 캠퍼스보다 영어회화 학원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백수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가까운 삼풍백화점에 자주 들렀다. ‘나’는 삼풍백화점 Q브랜드 매장에서 여고동창생 ‘R’을 만났다. ‘R’은 ‘나’와 동기지만 학창시절 대화를 나눈 적은 별로 없다. ‘R’은 여고 졸업 후 백화점에서 일했다. 무료한 ‘나’는 ‘R’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밥을 같이 먹고 ‘R’의 자취방에서 커피와 술을 마신다. ‘R’은 자기 방 열쇠를 주며 믿음을 보여준다. 그러던 중, ‘R’의 부탁으로 Q브랜드 매장에서 알바로 하루 일한다. ‘나’는 계산에 서툴러 실수를 저지른다. 한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잘못 준 것. 이 일로 팍팍한 현실을 맛본다. ‘나’는 동물사료를 수입하는 회사에 취직하고 남친도 생긴다. 그러는 사이 ‘R’과의 만남은 살짝 소원해진다. 그날, ‘R’에게 들렀으나 부재중이었다. 삐삐로 메시지를 남겼으나 답이 없다. 집에 돌아와서 일기장을 펼친 순간, 꽝하는 굉음이 울렸다. 무너져 내리는 건 순간이었다. 그때 받은 충격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사치와 향락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글이 신문에 실렸다. ‘한 번 와 본 적이나 있느냐! 거기 누가 있었는지 알기나 하느냐!’ 나는 악에 받쳐 항의했다. 몇 해 전,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벌써 십년이 흘렀다. ‘R’과 ‘나’의 삐삐번호는 증발했다. 연락할 매개 고리가 사라졌다. ‘R’한테 받은 은색열쇠는 아직 서랍에 있다. 삼풍백화점 자리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그 옆을 지나갈 때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저리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벌써 가물가물하다. 고도성장의 상징 같은 성이 일순간 무너지면서 오백여 명의 생명이 무단히 희생됐다. 저녁을 짓다가 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러 간 주부가 돌아오지 않았다. 도마 위에는 반쯤 썬 대파가 남아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이다. ‘나’는 사망자 명단을 보지 않는다. 친구 ‘R’이 희생됐다고 믿고 싶지 않다.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길 소망한다. ‘R’의 생존을 기도하는 것이 ‘나’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대형 참사 중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한 아가씨의 죽음을, 비록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 갔을지라도 그녀의 생애는 아무하고도 바꿔치기하거나 헷갈릴 수 없는 아름답고 고유한 단 하나의 세계였다는 걸 치밀하고도 융숭 깊은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시기 사회 분위기와 그 시절 특유의 문화현상을 해학적으로 그려놓은 덕택에 아련한 추억을 소환해보는 일은 덤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과연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잠시 호떡집에 불난듯했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유사한 사고는 되풀이된다. 철저한 반성과 뼈저린 성찰이 없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세월호가 침몰됐다. 잊을 만 하면 유사한 사고가 터진다. 사고원인은 크게 보아 비슷하다. 부실하고 안이한 정신자세와 ‘설마’하는 안전 불감증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하다. 자기 일에 대한 책임의식도 낮다.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가 여실히 노정된다. 바벨탑신화도 타산지석이다. 대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 무례와 오만이 신의 노여움을 사 ‘공든 탑’이 무너졌다. 그 벌로 인간은 종족 간 다른 언어를 쓰고 제각기 흩어져 사는 운명을 맞았다. 지금 또, 그 교만과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두렵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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