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잡매니저’가 농촌을 사로job고, 농업소득 5억 원 꿈꾼다 ||농장을 안동의 ‘핫

▲ 김미영 대표가 수확시기를 판단하기 위해 멜론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김미영 대표가 수확시기를 판단하기 위해 멜론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트롯열품이 거세다. 전 국민이 열광하는 트롯 경연 프로그램은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K-팝과 아이돌에 빠졌던 청소년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아마도 우리의 정서와 시대적 상황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가수가 트롯에 사랑과 우정, 이별 그리고 고향을 담아 노래했다. 농촌의 정서와 어려움, 강인함을 담은 노래도 많았다. 최정자가 부른 ‘처녀 뱃사공’과 황정자의 ‘처녀 농군’이 대표적이다.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군대에 간 오빠를 대신해 나룻배를 젓는 처녀 뱃사공과 60년대 산업화로 도시로 떠나가는 이농(離農) 행렬과 떨어져 소를 몰고 논밭으로 나가는 처녀농군의 모습은 강인함 그 자체였다.

▲ 김미영 대표가 시설하우스에서 방금 수확한 멜론을 들고 있다.
▲ 김미영 대표가 시설하우스에서 방금 수확한 멜론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에도 그런 강인한 모습의 처녀농군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우리는 그들을 청년농부라고 부른다. 사철 푸른 물이 흐르는 낙동강변에서 토마토와 멜론, 애호박 농사를 짓는 청년농부를 소개한다.

가냘픈 몸매가 농사꾼처럼 보이지 않지만 강인한 주인공은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농부애땀’ 의 김미영(37·여) 대표다. 각각 2천600㎡의 멜론과 방울토마토, 2천㎡의 인큐애호박(비닐 캡을 씌워 일정한 규격으로 재배하는 애호박)을 재배해 연간 1억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농부의 땀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은 ‘농부애땀’이란 농장이름이 정겹다.

◆청년농부, 변신은 무죄

김 대표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농업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연히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수도권에서 ‘잡(job)매니저’로 일했다.

▲ 김미영 대표가 수확시기를 판단하기 위해 멜론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김미영 대표가 수확시기를 판단하기 위해 멜론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농업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고향에 돌아와 회복기를 가졌다. 그때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농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회복되고 도시로 돌아가기 전 잠시 동안 농사일을 거들면서 농업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던 도시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생각도 한 몫을 했다. 마음속에 있던 도시탈출의 욕구와 농촌의 비전이 합쳐지자 고향이 김 대표의 손을 잡았다. 어렵게 부모님을 설득하고 도시생활을 청산했다. 처음하는 농사일이라 서툴렀다. 요령이 없으니 힘은 두 배로 들었다.

▲ 김미영 대표가 어머니와 함께 방금 수확한 대추방울토마토를 한 바구니 들고 있다.
▲ 김미영 대표가 어머니와 함께 방금 수확한 대추방울토마토를 한 바구니 들고 있다.
처음 2년간 영농교육에 몰두했다. 농사기술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농업기술센터 등 농업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교육을 받았다. 재배기술에서부터 전자상거래, 마케팅, 리더십 교육까지 시간이 나면 찾아다녔다. 교육받은 내용들은 바로 현장에 적용했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 김미영 대표가 하우스에서 ‘인큐애호박’을 살펴보고 있다. 애호박을 키우는 김 대표는 호박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한다.
▲ 김미영 대표가 하우스에서 ‘인큐애호박’을 살펴보고 있다. 애호박을 키우는 김 대표는 호박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론과 현장은 차이가 많았다. 부모님과의 의견충돌도 만만찮았고, 주변의 시선도 따가웠다. ‘농사는 아무나 짓나’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는 ‘연약한 아가씨가 얼마나 견딜까’라는 이웃의 인식은 사라졌다. ‘젊음을 투자할 일자리는 농촌에도 많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김 대표는 농장으로 출근하는 아침마다 파이팅을 외친다.

◆열정으로 이룬 전자상거래

처음 접하는 농촌의 어려움을 김 대표는 열정으로 극복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반드시 실천했다.

▲ 김미영 대표가 방금 수확한 인큐애호박을 선별하고 있다.
▲ 김미영 대표가 방금 수확한 인큐애호박을 선별하고 있다.
농작물 재배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만 판매는 오롯이 김 대표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공판장에 출하해 판매하는 쉬운 길을 걸었다. 다만 나의 농산물 가격을 공판장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들 “예전부터 그랬다”고 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전자상거래를 공부했다. 몇 차례의 실습과정을 거친 후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

첫 작품으로 멜론을 올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직접 값을 정하고 첫 판매가 이루어지자 자신감이 생겼다. 상세한 제품 설명과 농장 소개, 삶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고객이 늘어났다.

▲ 수확한 애호박 모습.
▲ 수확한 애호박 모습.
판매량도 쑥쑥 늘었다. 유명 쇼핑몰에서 ‘농부애땀’을 검색하면 언제나 상위권에 뜬다. 유명 쇼핑몰에서 ‘애호박’을 검색하자 전체 6천394건의 애호박 상품 중에서 김 대표의 애호박은 5위로 검색됐다.

▲ 어린 애호박에 비닐봉지를 씌우는 모습.
▲ 어린 애호박에 비닐봉지를 씌우는 모습.
단순히 판매되기를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쇼핑몰 시스템과 정책이 변경되면 즉시 보수교육을 통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적극성도 보인다. 오늘의 성과는 이런 열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책임감으로 얻은 농장이름

아무리 좋은 농산물이라도 소비자와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품질과 판매 과정에서 책임감을 가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2017년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이 덮쳤다. 갑작스런 폭우로 멜론 하우스가 완전히 침수됐다.

▲ 대추방울 토마토의 곁순을 제거하는 모습.
▲ 대추방울 토마토의 곁순을 제거하는 모습.
모든 농산물은 일단 침수가 되면 끝이다.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 쇼핑몰에는 이미 상품이 등록되어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문은 계속 들어오는데 판매할 상품이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난감한 상황이었다.

▲ 수확한 대추방울토마토 모습.
▲ 수확한 대추방울토마토 모습.
침수로 폐기된 멜론은 뒷전이었다.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던지 해결을 해야만 했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침수 피해를 입지 않은 농가의 멜론을 구입해서 배송을 했다. 심지어는 새벽에 공판장에서 구입을 해 보내기도 했다.

▲ 애호박 꽃.
▲ 애호박 꽃.
갑작스러운 농장 침수로 멜론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농장의 멜론을 구입해서 대신 배송하니 용서를 구한다는 편지를 동봉했다. 그해 멜론 농사는 망쳤지만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어느 전문 농업인이 그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면서 자신의 농장에 사용하려고 지은 농장 이름을 김 대표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 이름이 바로 ‘농부애땀’이다. 전화위복이었다.

◆깨끗한 땅, 건강한 농산물

김 대표가 유독 신경을 쓰는 부분은 땅이다. 좋은 땅에서 좋은 농산물이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토양관리는 농사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 항상 깨끗한 땅을 가꾸는데 정성을 들인다.

▲ 가지런하게 썰어 놓은 애호박.
▲ 가지런하게 썰어 놓은 애호박.
멜론과 토마토, 애호박 등의 재배가 끝나면 반드시 토양 소독에 들어간다. 비닐하우스를 완전히 밀봉하고 내부 온도를 60∼70℃로 올려서 태양열 소독을 한다. 재배기간 중에 발생했던 선충이나 곰팡이 같은 병해충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 가지런하게 썰어 놓은 애호박.
▲ 가지런하게 썰어 놓은 애호박.
2차 작업으로 하우스 내에 15일 이상 관수작업을 실시해 축적된 염류를 제거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토양이 건강한 상태를 회복하도록 한다. 병충해 발생은 그만큼 줄어든다. 농약 사용량이 줄어드는 것은 덤이다. 일거양득이다.

▲ 가지런하게 썰어 놓은 애호박.
▲ 가지런하게 썰어 놓은 애호박.
앞으로는 2년 재배 후 1년간 휴경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해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건강한 토양을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포석이다.

◆농산물 유통 플랫폼 구축과 고령 친화식품 개발

농촌지역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고령화다. 고령화가 진행될 수록 은퇴농의 증가와 함께 판매도 어려움을 겪는다. 농촌 공동화는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 탐스럽게 달린 대추방울토마토.
▲ 탐스럽게 달린 대추방울토마토.
영양의 불균형도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 문제다. 김 대표는 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웃 농가의 농산물 판매를 도와주고 고령친화식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고령화에 따라 영농 규모 축소와 함께 생산량도 줄어들고, 은퇴농들은 자가 소비용으로 가꾸는 텃밭의 잉여 농산물의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

▲ 방금 수확한 대추방울토마토 바구니.
▲ 방금 수확한 대추방울토마토 바구니.
이런 점에 착안해 농산물 유통 플렛폼을 구축해 본인의 농산물은 물론 주변의 고령농이나 은퇴농이 소량으로 생산한 농산물 판매도 도와주는 것이다. 또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고령친화식품을 개발해 노인들의 영양관리와 함께 농가 소득도 높여 나간다는 것이다.

그 준비 작업으로 ‘스마일케어식’을 공부하고 있다. 이웃의 농산물 판매를 지원하고 고령친화식품을 개발하려는 김 대표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본 기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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