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문길

바닷가에/ 하루 종일 있었다// 물 드나드는 바위 위에/ 혼자 있었다// 바다는 수시로 소리를 바꾸어/ 내게 왜 와 있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먼 산들이/ 첩첩이 가로막혀 있었다// 어디에 돌아갈 집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부르는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일이 없었다// 저녁 무렵 골목길/ 여인숙을 찾았다

『떠리미』(북랜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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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바다가 보고 싶다. 주로 세상살이가 잘 풀리지 않을 때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나면 마음이 허전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가신다. 사랑은 세상을 온통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행복이 최상의 정신상태라 한들 사랑 없는 행복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사랑을 잃은 마음은 황량하고 처참하다. 바다가 그립다. 사랑하는 자식이, 뜻과 같지 않게, 꼬이고 엇나가도 가슴이 갑갑하다. 바다가 부른다. 바다가 해결책을 주지는 않겠지만, 숨통은 트이지 않을까 해서다. 사업이 잘 안 풀리고 사달이 날 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어디라도 뛰어들어야 할 것만 같다. 무작정 탁 트인 바다로 간다. 사랑을 갈구하는 연인들은 바다를 찾는다. 바다는 꾸밈없는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도 시를 찾아 바닷가에 섰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혼자 바위 위에 앉아있다. 갈매기가 물고기를 노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위로를 준다. 물끄러미 수평선을 바라본다. 넋 나간 사람처럼 수평선 너머를 멍하니 건너다본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정신 줄마저 걷어갈 기세다. 몸과 마음이 빨려든다. 파도소리는 수시로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무슨 일로 왜 여기에 왔느냐고. 답하지 않는다. 굳이 답하지 않아도 바다는 알고 있다. 답을 바라지도 않으리라. 마음으로 서로 소통한다. 바다가 부처라면 시인은 가섭이다. 사는 게 그런 거지. 그런 게 사는 게지. 바다는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온몸에 바다냄새가 밴다. 마음이 나지막하게 가라앉고 머리가 텅 빈다. 비로소 뒤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 눈이 닿는 곳엔 산들이 겹겹이 막아서 있다. 돌아갈 집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시 바다다. 바다가 나를 부르지 않았지만 나를 부르는 바다를 돌아본다. 바다의 은근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파도소리에 취해 바위 위에 마냥 혼자 앉아 있다. 이제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버릴 것도 없어 뵈건만…. 아직도 과하다. 편안한 깨달음이 올 때까지 바다를 떠날 일이 없다. 집으로 돌아갈 일이 없지만 집으로 돌아갈 마음마저 버린 절박함은 지난다. 바닷물이 붉게 물들고 어둠이 사위에서 몰려와 수평선을 막아선다. 바다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른다. 개펄 내음이 풀풀 묻어있는 바닷가 여인숙으로 발길을 돌리며 내일을 기약한다.

바다로 간 시인은 오만가지 상념에 잠긴다. 참 잘 살았다고 자위해본다. 세파에 지친 몸을 바닷물이 어루만져준다. 인생살이에 찌든 마음을 파도소리가 씻어간다. 무심한 바다는 결코 무심하지 않다. 몸과 마음을 깔끔하게 씻어가 버렸지만 시인의 시심만은 신성불가침으로 남아있다. 파도가 몰려와도 쓸어갈 수 없고 태풍이 불어와도 날아가지 않는다. 진정한 삶의 엑기스다. 산과 강이 가로막아도 진실한 마음은 통하는 길이 있다. 이문길 시인의 맑은 시심은 보석처럼 영롱하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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