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에 대한 몇 가지 해석

서숙희

사랑은 현금이고 이별은 외상이다사랑은 총론이고 이별은 각론이다사랑은 입체적이고 이별은 평면적이다

그 모든 것 한데 섞인 소용돌이가 사랑이다그 모든 것 눌어붙은 지리멸렬이 이별이다

그 모든 사랑과 이별은아, 낙화이며 유수다

-『나래시조』(2019,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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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희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1992년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그대가 아니라도 꽃은 피어』『손이 작은 그 여자』『아득한 중심』과 시조선집『물의 이빨』등이 있다.

그는‘여름 우포를 읽다’라는 시조에서 생명의 숨소리를 듣는다. 여름 우포는 세상의 뭇 생명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어 사람과 더불어 품안의 모든 것들은 순하고 둥글어진다. 또한 우포를 지칭하는 여자는 필시 깊고 너른 자궁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앉아서 누워서 혹은 선 채로 몸을 내린 세상에서 가장 편한 서식의 몸짓들은 직접 우포를 대한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할 표현이다. 그윽히 품어 안게 되니 젖은 절로 푸르게 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칠십 만평이나 되는 거대한 젖가슴은 일억 사천만년 동안 마른 적이 없었기에 화자는 막막하여 도무지 읽어내지 못하겠노라고 토로한다. 그 놀라운 서사와 지구의 거대한 자궁을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명의 찬가를 읽으면 새 힘이 생긴다. 삶이 얼마나 깊고 그윽한 것인지를 실감케 된다.

이제 ‘사랑과 이별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을 보자. 격정적이고 역동적이며 시종일관 단호한 목소리다. 사랑은 현금이고 이별은 외상이요, 사랑은 총론이고 이별은 각론이요, 사랑은 입체적이고 이별은 평면적이라고 외쳐 부른다. 사랑의 길을 모질게 걸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화자는 그 모든 것 한데 섞인 소용돌이가 사랑이라고 하면서, 그 모든 것 눌어붙은 지리멸렬이 이별이라고 단정 짓는다. 이 대목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결구를 보라. 그 모든 사랑과 이별은 낙화이며 유수라고 말한다. 낙화유수를 분리한 이 구절은 사랑과 이별에 대한 모든 의미를 축약하고 있다. 이 시편에서 부여한 의미 중에 이별을 두고 눌어붙은 지리멸렬이라고 정의를 내린 점이 유독 눈길을 끈다. 예사로운 구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랑에 관한 시는 자칫 승화되지 못하여 직정적인 독백에 그칠 경우가 많다. 사랑이 타령으로 떨어져버리면 문학성은 간곳없고 넋두리만 남게 된다. 시인은 그러한 생각을 철저히 한 뒤 자신만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담론을 두 수의 시조로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현금, 외상, 총론, 각론, 입체적, 평면적, 소용돌이, 지리멸렬, 낙화, 유수라는 무게감이 있는 시어들이 다수 등장하여 하고 싶은 말을 요긴하게 하고 있다. 자유시에서도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렇듯 치열한 미학적 담론을 펼치는 것을 드물게 보게 되는데 시인은 두 수의 시조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정의의 결정판을 내놓았다. 툭박진 시어들은 사실 서정시에서 잘 쓰지 않는다. 시 속에 녹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과 이별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은 그 낱말들을 잘 용해하고 있다. 그의 솜씨가 범수가 아님을 잘 증명하는 실증적인 경우가 되겠다. 도저히 어떤 단어는 시어로 쓰이기 어려울 듯 한데 그 낱말을 써서 시를 이루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말을 활용하는 이의 기량에 달린 일이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낱말은 시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서숙희는 개성적인 시풍과 굵직한 목소리를 가진 시인이다.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강렬한 붓 터치를 효용성 있게 운용할 줄 안다. 하여 그의 미학적 역동성을 크게 기대해도 좋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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