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하늘

황삼연

외롭지 않으려고 부리가 다 닳도록 멎지 않는 노래를 울부짖듯 뱉어낸다

숲에는 그런 비장함 빼곡하게 차 있다

꿈 하나 놓지 않으려 깃털이 훌 뽑히도록 저릿한 날갯짓을 생을 다해 저어댄다

하늘엔 그런 간절함 촘촘히도 차 있다

-시조집 『숲과 하늘』(고요아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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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삼연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2009년 시조세계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설일』과 『숲과 하늘』(우리시대 현대시조선 127, 고요아침)이 있다. 가슴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넉넉하고 소중한 것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시 쓰는 일이 필연이 되어버린 시인이다. 자산이란 포근한 이름을 가진 산자락, 감천과 직지천이 합하여 동으로 흘러가는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에 저절로 길러진 감성이 축적되어 시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숲과 하늘’은 담백한 수채화다. 숲이 있는 곳에는 하늘이 있고 하늘 아래 어딘가에는 늘 숲이 있다. 숲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새들이 모여 산다. 새는 외롭지 않으려고 부리가 다 닳도록 멎지 않는 노래를 울부짖듯 뱉어내고 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람이든 새든 외롭지 않으려고 무리지어 산다. 서로 눈을 맞추고 몸을 부비며 사랑을 나눈다. 새는 부리가 다 닳도록 노래를 멈추지 않으려고 제 가진 힘을 다한다. 언뜻 보면 숲이 아주 평화롭게 보일지는 몰라도 숲에는 다 못 헤아릴 비장함이 빼곡하게 차 있다.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 남모를 고통을 인내하기도 하는 것이다.

꿈 하나 놓지 않으려 깃털이 훌 뽑히도록 저릿한 날갯짓을 생을 다해 저어대는 일이 새의 일생이자 사람의 한평생이기도 하다. 날갯짓을 멈추는 날은 종언을 뜻한다. 그렇기에 새의 활동 공간인 광대무변의 하늘에는 간절함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다. 마음껏 비상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활을 건 쟁투가 일어나는 절박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그랬다’라는 단시조에서 바람과 강물과 세월에 대해 사유한다. 씨 하나 맺으려고 바람이 그러했고, 돌 하나 다듬으려고 강물이 그러했고, 사람 하나 세우려고 세월도 무장 그러했다는 자각을 노래하고 있다. 씨와 돌과 사람은 그렇게 연단을 받아 자존을 지키게 된 것이다. 그처럼 시인은 연륜의 깊이에서 오는 철학적 사유로 시의 물꼬를 여는 일에 전념한다.

또한 다채로운 소재들을 대상으로 삼아 금맥을 캐기 위해 언어와의 씨름을 즐긴다. 시조를 쓰는 일은 보통 힘든 길이 아니다. 혼을 사르려는 의지가 없으면 해낼 수 없는 고독한 길이다. 고행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 바람이 만든 여백을 읽어내는 능력을 보이기도 하고, 이제 봄빛과도 겸상을 할 줄 안다. 또한 야멸차게 빗대어서 깊이 파헤치기도 한다. 어느 날은 바닷가에 서서 파도에게 끝의 끝을 보았는지 묻기도 하고, 끝의 끝자락을 붙잡아 보았는지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정신적인 수맥을 찾아 순례의 길을 걷다가보면 새로운 금맥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끝에서 차들의 굉음으로 들길마저 미어지는 정황을 목도하기도 한다. 인생사가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지언정 창문을 열어 싱그러운 바람을 들이고자 힘쓴다. 새의 힘찬 비상이 펼쳐지는 울창한 숲과 짙푸른 하늘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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