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감염병 퇴치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철학자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수단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가 바로 ‘열린사회’라고 했다. 그는 소수 지배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곳을 ‘닫힌사회’라고 불렀다. 포퍼는 과학에서 조차도 합리성의 근거를 비판과 토론에서 찾음으로써 합리성의 개념을 바꾸었다. 그는 새로운 합리성의 개념은 과학을 넘어 철학 전반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철학과 과학에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토론의 방법이며, 이 방법은 “문제를 분명히 진술하고 그에 대해 제출된 다양한 해답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고 했다. 포퍼는 “과학 이론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비판의 빛 아래서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신화와 구별되고 비과학과 구별된다.”고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초반에는 다소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는 관점과 처한 입장에 따라 다양한 논란도 있었지만 우리의 대처 방법은 이제 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놀랍고 대단하다. 그 모든 긍정적인 성과는 우리가 어떤 사안이든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는 민주적 열린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우리의 방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비판적 자세를 취하던 일본 언론들도 이제는 우리에게 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개발한 차를 타고 검진받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승용차가 없는 환자나 고령자들이 안전하게 검사받을 수 있는 워킹 스루(walking through)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이 신문은 공중전화 부스 형태인 ‘감염 안전 진료 부스’로 환자가 들어가면 밖에서 의사가 검체를 채취하도록 설계됐다고 소개하면서 환자 비말에 의한 의사 감염 위험을 줄이고 환자 대기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많은 언론들은 우리 국민들이 초유의 재난 상황에서도 사재기를 하지 않고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의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국민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방역 지침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특별재난지구로 선포된 대구와 경북 지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정말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지역민들은 방역 당국의 위생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 검사와 치료의 신속 정확성, IT와 접목한 투명한 정보 공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도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다.

인적 교류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이동이 줄어들면서 주로 오프라인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음식점, 숙박업, 유통서비스업, 기타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그 종업원들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지역민들은 불황을 넘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여 신속하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빠른 시간 안에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지금은 목전의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집중하느라 가혹한 어려움과 고통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게 될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은 전 세계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미 우리 지역 사회는 한 달 가까운 ‘사회적 거리두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불안감과 단절감 때문에 다양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보건당국은 감염병의 예방과 치료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신 건강관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염병의 종식과 아울러 마음과 정신의 건강도 회복해야 우리는 코로나19를 완전하게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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