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코로나 감염병에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과 한국을 넘어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2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pandemic)을 선포했다. 한국, 중국, 이탈리아, 이란 등 4개 국가를 사실상 위험국으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확진자 발생이 줄며 한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자 전 세계가 우리 국민에게 빗장을 걸어 잠갔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했다. 15일 현재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나라는 130여 곳이다.

대구 시민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한 속앓이를 했다. 확진자 급증으로 언제 감염될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코로나 진원지로 기피 대상이 돼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해야 했다.

-신천지·대구 낙인은 편견의 희생양 찾기

‘대구 봉쇄’, ‘대구 사태’ 라는 낙인찍기에 몸서리쳐야 했다. 국난극복의 자긍심 가득한 TK가 한 순간에 코로나 감염병 진원지로, 멀쩡한 시민들이 감염병자로 매도당했다. 대구 출신 환자가 서울지역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고 대구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직장인은 자가 격리해야 했다.

TK는 억울하다. 하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다. 외부의 멸시와 차별을 감내했다. 대구·경북은 만신창이가 됐다. 부지불식간에 대구 기피 현상이 생겼다. 외부 시각은 싸늘하게 변했다. 코로나 온상으로 낙인찍힌 대구 기피 현상이 야금야금 국민 의식을 갉아먹었다.

WHO 사무총장은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낙인찍기 확산을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다”며 이성적 사고를 강조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국내 첫 확진 환자가 중국인 여성으로 밝혀지면서 전염병 공포와 함께 중국인 혐오가 시작됐다.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 중국 유학생 기피, 중국인 출입 금지 상점 등 기피와 혐오가 줄을 이었다.

낙인은 신천지 교회로 타깃이 옮겨졌다. 코로나19는 신천지 대구교회를 숙주 삼아 급속 확산됐다. 신천지 해산 청원과 신천지 교인 감염병 괴담이 떠돌았다. 신천지 교인이 혐오의 표적이 됐다. 신천지 교인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회는 혐오와 낙인, 비난을 멈춰달라고 하소연했다.

낙인의 무서움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뼈저리게 경험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조선인 수천 명을 무차별 구타하고 학살했다.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분노의 투사 대상을 찾다 보니 혐오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탈출구로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기피와 혐오 등 차별적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해 편견을 만든다.

-혐오 도시에서 모범 도시로 대 반전 이뤄

그런데 최근 1주일 사이 대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혐오 국가에서 본받아야 할 모범 국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대구가 있다.

미국의 ABC 방송은 대구 르포를 통해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었다.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었다’며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대구 시민들의 모습을 전했다. 대구가 코로나19의 진원지임과 동시에 바이러스 해결 노력의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외신들은 또 한국의 진단키트 양산 능력, 환자 관리법 등 방역 정책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확진자 동선 공개 등 투명하고 체계적이며 민주적인 대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한국의 감염병 관리와 검진 시스템인 드라이브스루를 배우겠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미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망상을 먹고 자란다’ 고 했다. 이제 혐오와 기피에서 벗어날 때다. 진원지 오명을 감내하며 셀프 격리하고 있는 대구 탓은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돌을 던지지 말자. 그동안 모두 고생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마무리만 잘 하면 전염병 대처 모범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이미 터전은 마련됐다.

‘당연한 듯이 누렸던 모든 일상이 이제는 그리움이 되고 소원이 됐다’는 한 언론계 선배의 넋두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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