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 대응한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코로나19 사태로 온나라가 공포 분위기다. 특히 전국 확진자의 대부분이 몰려있는 대구는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다.

정부의 대책은 뒷북의 연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설 연휴 직후인 지난 1월28일 국립 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 “정부 차원에서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제적 조치들이 강력하고 발 빠르게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엔 국내 확진자가 한자리 숫자였다.

---1차 방역 여지없이 실패한 결과

그러나 불과 한달 남짓 만에 확진자는 7천134명(8일 기준)으로 급증했다. 정부가 책임지는 1차 방역이 실패한 결과다.

국내 첫 확진자는 1월20일 발생했다. 중국 우한에서 첫 공식 확진자가 발생한 후 20여일 만이다. 대구의 첫 확진자는 2월18일 나타났다. 그로부터 20일 만에 확진자는 대구 5천381명, 경북 1천81명으로 늘어났다. 한 순간에 대구·경북 전역이 바이러스로 초토화 됐다.

대책은 겉돌았다. 대구에서는 현재 2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병상이 없어 자가격리돼 있다. 기저질환을 가진 노령층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사태가 이어졌다.

대구의 확진자들이 병원에 가지 못해 죽어가는 동안 다른 지자체에는 빈 병상이 적지않게 있었다. 환자를 입원시켜 달라는 대구시장의 애절한 요청은 자기지역 주민의 눈치를 보는 자치단체장들의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외면당했다. 정부가 비상시 병상 통합관리를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뒤늦게 조정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마스크 대란도 길게 이어졌다. 국민들의 불안과 고통도 깊어졌다. 현 상태에서 마스크는 생명줄이다. 정부가 뒤늦게 비상조치로 약국 등을 통한 ‘1인 주 2매’ 한정판매에 나섰다. 그간 공적 판매를 한다고 했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몇 시간씩 줄을 서다 헛걸음 하는 경우도 많았다. 품귀 조짐은 2월 초부터 나타났다. 한달 가량 시간만 허송한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 국가 행정인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위기대처 능력인가. 국민들의 분노와 한숨소리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결정적 미스는 조기에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정치, 경제 등 여러가지 관계를 이유로 조치를 미뤄왔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우한이 속한 후베이성에 체류한 적이 있는 외국인에 대해 입국을 금지했다. 뒷북 조치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 “창문 열고 모기 잡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감염병 위기경보도 문제였다. 정부는 사태가 급속 악화된 지난달 23일에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 조정했다. 의료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조정을 건의했지만 계속 외면했다. 어쩔 수 없는 지경에 몰려서야 변경에 나섰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라는 비난을 자초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 초기 폐쇄적 종교시설과 취약계층이 입원한 정신병동 등의 방역과 점검을 소홀히 한 것은 두고두고 뼈아픈 실수로 지적될 것이다.

---민간분야는 나무랄데 없이 움직여

그러나 이에 반해 민간분야는 나무랄데 없이 매끄럽게 움직이고 있다. 전국의 의료인들이 대구를 돕기 위해 모여들었다. 지역 의료인들은 퇴근 후 환자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힘을 보태고 있다. 단체, 기업, 개인의 성금과 위문물품도 꼬리를 물고 답지한다. 대구를 응원한다는 국민들의 메시지도 넘쳐난다.

그뿐이 아니다. 전국민의 마스크 쓰기가 일상화 됐다. 자신의 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오래 착용하면 귀나 접촉부위가 불편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짧은 시간 내 뿌리내렸다. 손세정제 사용도 필수가 됐다. 위기를 맞아 건강한 시민의식이 작동하는 것이다.

“기업은 이류, 관료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며 한국의 행정과 정치를 꼬집은 말이 생각난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지난 1995년 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지금 국민은 ‘일류’지만, 행정은 여전히 ‘삼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류’라는 정치는 논외로 하고.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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