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파블로 네루다

그 나이였다… 시가 나에게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 겨울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디서 왔는지. /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 밤의 한 자락에서, 홀연히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건드렸다. //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 내 입은 도무지 이름들을 대지 못했고, 내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다. / 끓어오르는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내 나름대로 해 보았다. /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이 첫 줄을 썼다. /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수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지혜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 휘감아 도는 밤, 우주를, // 그리고 나, 이 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의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다.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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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년이 최초로 시심을 얻은 날,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고 그 속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시다. 시적 영감이 최초로 떠올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했다. 그 나이였을 때쯤 어느 날, 불현 듯 시적 영감이 떠올랐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그것은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에서 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침묵도 아니다. 홀로 고독하게 걷던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처럼 예고 없이 찾아왔다. 깜깜한 밤의 자락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것들로부터,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시가 나를 불렀다. 홀로 돌아오는 길에 정체성마저 찾지 못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에게 시가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영적인 움직임이 태동하는 듯하다. 불같은 뭔가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다. 언젠가 잃어버린 날개일까. 불꽃처럼 떠올랐다가 일순간 사라질 영감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뭔가 시도해봐야 할 것만 같다. 새로운 경험이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 불타오르는 것들을 토해내서 그 정체를 언어로 옮겨본다. 그렇게 어렴풋이 첫 줄을 썼다. 그건 분명하지 않은 것, 뭔지 잘 모르는 것, 세속적인 때가 묻지 않은 무의미한 것, 백지 상태의 원초적 생명의 정수, 그런 것이다,

문득 눈이 뜨인다. 잠겼던 하늘이 풀려 우주가 처음 열리고 유성들이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 숨 쉬는 논밭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나온 세월들의 얼룩진 역사가 구멍 뚫린 그림자에 홀연히 나타난다. 전쟁과 열정과 번성으로 점철된 지난날의 흔적과 삶의 애환이 그 속에 담겨있다. 휘감아 돌아가는 밤하늘을 보며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마주한다. 지구의 한 귀퉁이에 서있는 티끌 같은 나는 얼마나 하찮은 미물인가. 총총한 수많은 별들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노라면 나 자신이 저 거대한 우주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만다. 별들과 함께 허공에 누워 한 줄기 바람에 마음을 실어본다.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마침내 시인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파블로 네루다에게 그렇게 시(詩)가 찾아왔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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