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노란 산수유가 병아리색 봄이 왔음을 알린다. 빨간 동백꽃에 앉은 동박새도 세상이 온통 봄으로 바뀐다고 노래한다. 대지는 봄기운에 기지개를 켜는 데 마스크 쓴 얼굴에는 온통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이번 봄,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꿋꿋이 버텨내야 하지 않겠는가.

‘생일 축하해요~!’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어머나, 그렇구나! 오늘이 음력으로 그날이었구나. 고맙다는 인사를 챙길 겨를도 없이 얼른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 머리카락이 내려오지 않도록 캡을 쓰고 손 위생을 시작한다. 손 세정제를 묻혀 제일 먼저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고 다음엔 손바닥을 마주 잡고 문지르고 또 그다음엔 손등,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문지르면서 ‘생일 축하합니다./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마음으로 흥얼거려본다. 노래 한번 끝날 즈음엔 엄지손가락을 다른 편 손바닥으로 꼭 잡고 돌려가면서 문지른다. 다시 노래를 떠올리며 손바닥을 마주 대고 손깍지를 끼고 문질러 주고. 손가락을 반대편 손바닥에 놓고 문지르며 손톱 밑을 깨끗하게 한다.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손 씻기를 하려면 생일 축하 노래 두 번을 불러야 할 정도의 시간이다. 그런 다음 라텍스 속 장갑을 끼고 모든 보호 장구를 맨눈으로 살펴 구멍이 뚫려있거나 이상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방호복을 입는다. 다리부터 집어넣은 뒤 팔을 끼우고 허리에서 목까지 올라오는 지퍼를 반쯤 올린다. 한 과정이 지날 때마다 손 세정은 필수다. 다음엔 덧신을 신고 끈으로 종아리에 단단히 동여맨다. N95 마스크를 끼고 잘 밀착이 되었는지 확인한 후에 고글을 쓴다. 고글,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틈이 보이지 않도록 방호복 후드로 단단히 얼굴을 감싼다. 손 세정을 다시 하고서 마지막으로 겉 장갑을 끼고 다시 한번 빈틈이 없는지 살핀 다음 착의 실에서 나와 입원 병동으로 들어가는 전실을 지나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환자의 방문을 연다. 아무리 마음 바쁘더라도 확진자를 가까이 대하기에 스스로 감염으로부터 방어해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막지 않겠는가. 어설프게 서두르다가 자칫하여 의료인 감염이 일어나면 그때는 큰일이지 않겠는가 싶어 모두가 노심초사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꼼꼼하게 챙겨서 회진하며 바이러스를 싸워 이기는 전사라 여기며 하루하루 버틴다.

기다렸다는 듯 환자는 반색하며 이런저런 증상을 이야기한다. 확진 받고 입원 대기자 명단에 올랐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아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였던 환자, 그동안 내내 열이 있었다고 한다. 열이 오르내리고 코피를 쏟아내다가 설사까지 하여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입원 후 치료를 시작하고는 심적으로 안심이 되었는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조금씩 나아지고 열도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살 것 같다면서 안도하는 그를 보면 마음이 울컥하다. 어느새 고글이 뿌옇게 흐려온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몸은 땀으로 젖어 들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인류가 처음 대하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으로 환자는 얼마나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었을까? 머리도 아파져 오고 가슴도 답답해 오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더 아려 와서 ‘얼른 나아서 빨리 봄 햇살을 맞아 보셔야지요.’ 그 앞에 서서 잠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모임도 나가지 않고 집회도 멀리하는 사회적 거리야말로 감염의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일지 모르니, 참 답답하고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도 언젠가는 수그러져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반드시 돌아올 터이니. 그때까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감염원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답답하더라도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지 않으랴. 지겹다고 생각하면 정말 한순간도 버티기 힘들지 모른다. 혼자 즐기는 법도 배우고 각자의 위생을 잘 챙기면서 희망을 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힘든 고난이라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잠시 멈춤의 이때를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갈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긍정의 마음으로 견디다 보면 일상으로 돌아가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날은 반드시 찾아오지 않겠는가.

대구에 사는 한 할머니는 ‘비우니 채워지더라’는 글에서 ‘냉동실 발가벗고(비우고) 은행 갈 일 별로 없고, 한 달 생활비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부자 된 기분이다.’라고 쓰셨다. 그분의 글처럼 재치와 해학으로 삶의 지혜를 나눠가며 억지라도 웃으며 살아야 하지 않으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날이더라도 구름 위에 떠 있을 눈 부신 해를 상상하며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버틸 일이다. 어렵더라도 작은 즐거움을 찾으면서 이 힘든 순간을 잘 견디시길. 방호복을 입으며 오늘도 소망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