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동쪽과 북쪽 성벽 모서리 치성 기단석으로 활용돼, 조선시대 개축 과정에서 사용,

▲ 경주시가 경주읍성 복원정비를 위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신라시대 석탑의 팔부중상이 조선시대 축조한 성의 석재로 활용된 것을 발견했다.
▲ 경주시가 경주읍성 복원정비를 위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신라시대 석탑의 팔부중상이 조선시대 축조한 성의 석재로 활용된 것을 발견했다.
경주읍성 복원정비를 위한 문화재발굴 과정에서 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팔부중상이 발견됐다. 신라시대 팔부중상이 성벽의 석재로 재활용된 사례로 당시 시대적 사상에 대한 중요 연구자료로도 눈길을 끈다.

경주시는 한국문화재재단과 추진 중인 경주읍성 복원정비 사업 부지에서 유적 발굴조사 중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벽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사용된 팔부중상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재사용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팔부중은 부처의 설법 청중을 구성하는 다양한 무리 중 하나다. 인간 이외의 다양한 존재를 일컫는 집합적 용어다.

팔부중상 면석은 다른 나라 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고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창안된 독특한 부조상이다.

팔부중상이 부조된 탑재 3매는 경주읍성의 동문(향일문) 및 성벽의 북쪽구간으로 북벽으로 연결되는 5구간의 체성 벽에 덧대어 있는 치성의 가장 아래인 기단석으로 사용되었다.

팔부중상이 부조된 면석 3매는 치성 기단의 북쪽과 동쪽 모서리를 연결하며 놓여 있다.

기단석에는 팔부중상의 면석 이외에도 탑 부재들과 건물터의 주초석 등이 사용되었다. 팔부중상의 부조 면이 위로 보며 놓여 있기 때문에 치성이 축조되었을 당시에는 그 위로 많은 석재가 올려져 있어 성벽 외부로 상이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팔부중상 면석 3매에는 각 1매에 1쌍의 팔부중상이 부조되어 있다. 이번에 출토된 팔부중상은 서탑의 서쪽(천/가루라)에 사용되는 면을 제외한 북쪽(긴나라/마후라가), 남쪽(아수라/건달바), 동쪽(야차/용)에 사용하는 3면의 면석이다.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팔부중상이 부조된 석탑 및 탑재 중에서 동일한 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경주읍성은 고려시대 축조됐다. 팔부중상이 발견된 구간의 치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체성과는 별도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문헌기록을 통해 조선시대 세종(1418~1450년)연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종섭 한국문화재재단 팀장은 “치성이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볼 때 팔부중상 석탑재가 성벽의 석재로 사용됐다는 것은 당시의 사상적 배경과 불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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