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 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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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한파는 채찍이 되어 북방으로 내몬다. 하늘이라도 지칠 만큼 멀리 쫓겨 왔다. 하늘마저 힘없이 낮게 내려않았다. 더 이상 쫓겨 갈 곳이 없다. 쫓겨 온 곳이 원래 살던 곳보다 더 춥고 엄혹하다. 그렇다고 두고 온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고향은 이미 ‘나의 살던 고향’이 아니다. 산천과 논밭을 빼앗기고 봄마저 빼앗겼다. 서릿발마저 잡아먹을 듯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일제의 착취와 수탈은 여기까지 미친다. 몸과 마음을 녹일 곳 없는 고립무원이다. 어디다 무릎 꿇고 빌어 보고 싶지만 의지할 곳도 비빌 언덕도 없다. 한 발 쑤셔 넣고 디딜 땅조차 없다. 삶의 극한상황이자 인고의 절정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눈감고 골똘히 생각해 본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다. 겨울이 강철로 된 무지개인양 비록 위세를 떨치지만 스러지고 나면 그뿐이다. 축축한 물 기운이 가시면 사라질 운명이다. 화려한 빛과 색채로 세상을 유혹하는 한편 차갑고 억센 쇠 채찍을 휘둘러대지만 원래 무지개는 신기루와 같이 곧 사라져 흩어질 허상이다. 고개를 넘으면 겨울도 내리막길을 걷고 봄이 오는 법이다. 극한의 추위도 곧 물러갈 것이다. 무자비한 기세로 채찍을 휘두르는 한파도 이젠 막바지 발악이다. 이 극한 추위를 견디고 극복하는 일이 고비다. 곧 봄은 온다.

일제가 동양평화라는 무지개 같은 꿈과 희망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한낱 사탕발림이고 눈속임이다. 굳이 그것이 무지개라면 차갑고 강압적인 강철 무지개다. 대동아공영권 운운하는 것은 곧 들통 날, 소가 웃을 새빨간 거짓말이자 파렴치한 사기극이다. 일선동조론과 내선일체는 우리 민족을 전쟁터로 유인하기 위한 허울 좋은 그럴듯한 미끼이며 한발 더 나아가면 민족말살 음모다. 일제 사기행각의 전말은 시간이 지나면 군국주의 파쇼로 백일하에 드러날 일이다. 강철 무지개는 일제의 채찍이고 칼날이다. 강철 무지개가 쇠처럼 강하고 영원할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무력한 환상일 따름이다. 끝없이 세력을 뻗치고 승승장구할 듯 유난을 떨고 있지만 그것은 메뚜기의 한 철 허장성세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천방지축 일제에 분노가 치민다.

시인의 상상력과 애국의지는 해와 무지개마저 소환된다. 무지개는 해를 향해 겨냥된 칼날로 허공에 팽팽하게 걸려있다. 강철무지개는 군국주의 파쇼, 해는 일제를 상징한다. 강철무지개는 일장기의 심장인 붉은 해를 찌르는 절묘한 장치다. 제 손가락으로 제 눈을 찌르는 형국이다. 군국주의 파쇼는 일제를 무너트리는 부메랑칼날이라는 은유다. 겁 없이 설쳐대는 일제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곧 무너질 일만 남았다. 태평양전쟁은 제 무덤을 파는 행위다. 강철무지개는 일곱 겹의 강궁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은 일제의 심장에 화살을 당길 작정이다. 일제의 철저한 검열과 감시·감독을 피할 수 있는 상징과 은유는 이육사 시인만이 사용가능한 비장의 무기다.

코로나19가 절정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스스로 보균한 듯 서로를 배려하고 침착하게 절제한다면 머지않아 신종바이러스는 곧 자멸할 것이다. 이제 곧 봄이 온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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