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

정수자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 같은/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 같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

시조집 『허공 우물』(천년의시작,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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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씨는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그을린 입술』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 녘 길을 떠나다』 등이 있다. 그는 시조를 쓰면서 부단히 고뇌하는 시인이다. 정수자씨는 시조의 느슨한 정형도 우리네 산과 들과 개울이 길러온 곡선의 아담한 품과 가락을 항아리모양 담아온 것임을 깨닫는 일이 그것이다. 또한 급변의 와중에도 변함없이 살아남을 보편적 미학을 궁구하며, 고금의 종단이나 횡단의 관통과 통섭을 통해 오래된 새로움을 구하고자 힘쓰고 있다.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부터 경북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유별나게 붉다.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학자들이 금강소나무 혹은 줄여서 ‘금강송’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시인은 금강송을 바라보면서 떠올린 생각들을 아홉 줄로 축약해서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에 대한 천착이 예사롭지가 않다.

금강송을 두고 이만큼 치열하게 이미지를 축조하는 일은 웬만한 내공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금강송’이 오늘의 우리에게 일러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모름지기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그 누구이든지 ‘금강송’의 내밀한 품격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더구나 몹시 혼탁한 시대가 아닌가.

중정의 삶이 요청되는 때에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것을 직시하고 뼛속까지 곧게 서 있는 서슬 푸른 직립들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처럼 금강송은 다만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 기품을 보인다. 또한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이라면서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서는 자존을 오롯이 견지한다. 실로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로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으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의와 절조를 품고 ‘금강송’은 붉은 저 금강 직필이 되어 하늘을 찌르면서 치솟는다.

타협과 상생이 간절히 요청되는 시대에 한 편의 우뚝한 시조 ‘금강송’이 들려주는 속 깊은 노래는 삶의 한 지침이 되고도 남는다. 진실로 군말과 수사보다는 내면 깊숙이 우러나는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이정환 (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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