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이 1만 평에 달해 ‘만평 네거리’로 불려||1968년 만평 로타리 세워져, 시민들 만



▲ 대구 서구 만평네거리의 현재 모습. 도로 위로 도시철도3호선 사장교가 보인다. 만평네거리는 대구 북부와 시내를 잇는 대구 서·북부 교통의 요충지로 출퇴근시간 극심한 교통 정체가 일어나는 곳이다.
▲ 대구 서구 만평네거리의 현재 모습. 도로 위로 도시철도3호선 사장교가 보인다. 만평네거리는 대구 북부와 시내를 잇는 대구 서·북부 교통의 요충지로 출퇴근시간 극심한 교통 정체가 일어나는 곳이다.




“과거에는 여기가 넓은 들판이었어요. 1만 평이나 되는 넓은 평야라는 뜻으로 ‘만평’이라고 불렸습니다.”

대구의 8번째 광장은 대구 서구와 북구 사이에 위치한 ‘만평 네거리’ 일대다.

현재 만평 네거리는 팔달로와 공단3로 및 서대구로를 연결하며 대구 강북과 시내는 물론 북대구 나들목까지 연결하는 서북부의 중요한 관문이다.

‘7호 광장’인 두류 네거리와 함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에게는 ‘8호 광장’으로 불릴 만큼 현재까지 광장으로 알려진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만평 네거리 이름의 유래는 과거 세워졌던 로타리의 면적이 1만 평이어서 대구시 지명 위원회기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만평 네거리 인근에는 서대구고속터미널, 북부정류장이 위치해 있어 버스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2021년 서대구고속철도역이 개통되면 대구 서·남부권에서 전국으로 뻗어 나가는 시외 교통과 더불어 인근 염색산업단지 재생사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8호 광장 일대의 주거 환경이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전국으로 뻗어나가던 미나리 밭

만평 네거리는 서구 비산동 일대에 있다.

대구서구향토사에 따르면 이 지역의 지명인 비산동(飛山洞)이란 이름은 산이 날아온 전설에서 유래했다.

이 지역은 옛날엔 넓은 평야였으나 어느 날 새댁이 달천(현 달서천)에 나와 빨래를 하던 중 하늘에서 그윽한 음악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서쪽에서 커다란 산이 둥둥 떠 날려와 지금의 비산동 일대에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비산동은 1608년 해주 오씨, 인동 장씨, 경주 최씨 등이 정착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옛날엔 ‘날뫼’, ‘오장최동’이라 불렸고, 일제강점기 시절엔 ‘시목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과거 만평 네거리 서쪽 일대는 ‘미나리 꽝’이라는 자연부락이 펼쳐져 있었다.

현 비산동, 평리동 일대에 대단위 미나리 밭이 형성된 것은 50여 년 전이며 침수로 벼농사를 망치는 일이 반복됐었다.

그래서 선택한 작물이 바람에 피해가 적은 농산물인 미나리였다.

약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는 대구의 미나리 공급원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나리는 대구는 물론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로 공급됐다고 한다.

1978년부터 만평 로타리 건설이 본격화되며 이 일대 6만3천여 평을 메우기 시작해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자리에 북부 시외버스정류장과 상가가 들어섰다.





▲ 1970년 만평 로타리의 모습. 당시 만평 로타리는 중앙에 대형 분수대가 설치됐고 지나는 차량이 많지 않아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여 소통하는 장소였디.
▲ 1970년 만평 로타리의 모습. 당시 만평 로타리는 중앙에 대형 분수대가 설치됐고 지나는 차량이 많지 않아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여 소통하는 장소였디.




◆예전에는 대형 분수대 있는 로타리

“예전에는 중앙에 대형 분수대가 있었습니다. 주위에 장도 열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었어요.”

만평 네거리의 처음 이름은 ‘만평 로타리’였다.

1965년 2월2일, 건설부 고시 제1387호에 의거해 도시 계획으로 1968년 만평 로타리를 만들었다.

로타리가 대구시의 서쪽 관문의 역할을 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차량을 원활하게 소통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도시가 팽창하고 교통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만평 로타리가 차량 소통에 지장을 주자 로타리를 네거리로 바꿨다.

당시 만평 로타리 중앙에는 큰 분수가 있고 주변으로 넓은 도로와 공간이 마련돼 있어 정치인들의 연설의 장과 시민들의 만남의 공간이 됐다.

서구문화원 이종우 사무국장은 “당시 만평 로타리는 철저한 도시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공간이었다. 넓게 펼쳐진 광장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소통의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시내와 강북을 잇는 교통 요충지

만평 네거리는 팔달교 북쪽의 칠곡지구와 대구 시내를 잇는 대구 서북부 교통의 요충지다.

특히 노원로, 서대구로, 팔달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출퇴근시간에는 통근차량과 북부정류장 및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을 오고가는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들로 팔달교~만평네거리~평리네거리 구간은 대구의 상습 정체 구간 중 하나가 됐다.

로타리에서 교차로로 변경되며 면적은 2만4천130㎡로 다소 줄었다.

2015년 도시철도3호선이 개통하며 만평역이 세워졌다.

도시철도3호선은 지하를 달리는 1·2호선과는 달리 지상의 모노레일로 평균높이가 11m에 달한다.

만평 네거리 한복판에는 도시철도3호선이 지나는 큰 규모의 사장교가 조성돼 있다.



대형 아치형 주탑이 있으며 폭 42m에 높이가 30m에 달하고 야간 경관조명도 설치돼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다.

만평역의 형태는 인근 대구제3산업단지의 주력 산업인 안경 엉덩이 모습으로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평균 4천여 명이다. 네거리의 혼잡한 교통량에 비하면 도시철도 이용객 수는 많지 않은 편.

인근에는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과 북부정류장도 있다.

북쪽으로는 대구염색산업단지가 밀집해 미세먼지와 악취 민원이 많은 등 정주여건은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2021년 서대구고속철도역이 개통하고 도시 트램 4호선도 인근을 지날 것으로 예상돼 주변 환경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 현재 대구 염색산업단지의 모습.
▲ 현재 대구 염색산업단지의 모습.


◆염색산업단지, 재생사업으로 다시 태어나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만평 네거리 북쪽의 염색산업단지에 대한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염색산업단지는 염색가공업의 전문화와 협업화를 위해 1981년 조성돼 현재 84만6000㎡의 면적에 125개의 염색업체가 입주한 특화 산업단지이다.

대구의 산업화를 견인한 염색산업단지는 현재 경부고속도로와 광주대구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대구포항고속도로는 물론 대구공항과도 인접하는 등 교통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도시의 외곽지역에 조성됐지만 도시의 폭발적인 팽창과 함께 현재 대구의 도심지역에 포함됐다.

하지만 기반시설의 노후화 및 지원시설 부족으로 입지 여건이 점점 악화됐다.

이는 대구의 염색산업 경쟁력을 저하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이번 재생 사업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예정이다.

총 사업비는 411억 원으로 도로와 교량 확장 및 주차장 조성 등 기반시설 정비와 가로등·벤치 등 각종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또한 올해부터 단계별 기반시설 조성사업이 착수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염색산업단지 재생 사업이 완료되면 서대구 역세권 개발과 연계돼 지역의 정주 여건이 확연히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시 관계자는 “염색산단 재생사업을 통해 보다 좋은 환경의 정주여건을 제공할 것”이라며 “서대구 역세권 개발 사업과 연계해 서대구 지역이 대구의 관문으로서 손색이 없도록 주변 여건을 개선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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