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TK가 마음 둘 데가 없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를 찾은 당시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가 정권을 넘겨준 TK(대구·경북) 지역민들의 헛헛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밉고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기에는 뭔가 찜찜해 하는 심기였던 터에 중도로 돌아선 이들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개혁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미래당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물론 유 의원은 TK가 바른미래당을 지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발언으로 이해됐다. TK의 딸로서 대통령으로 밀어줬더니 탄핵의 덫에 걸려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에 대한 연민과 괘씸함 등이 혼재한 TK 지역민들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읽고 있었던 그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은 지역에서 자치단체장 한 명 배출하지 못했다. 선거 결과 민주당이 대약진했다 .

4·15총선을 불과 70여 일 앞둔 지금 보수의 심장 TK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보수 야당인 한국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이다. 지난달 31일 500여 개 정당·단체가 참여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가 출범, 보수 통합에 나섰지만 통합은 지지부진하다. 통합의 핵심인 새로운보수당의 유승민 의원과 신경전만 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자신의 지분 확보와 대권을 위해 마이웨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본인이 탄핵의 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본인의 대권 가도도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함께 하기를 바랐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손학규 대표와 결별, 신당 창당에 나서면서 황 대표가 내민 손길도 거부했다. 애당초 그는 보수당과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 우리공화당은 내분에 휘말려 있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신당 창당과 독자행보를 선언했다.

-사분오열 보수, 반쪽 통합으로 가나

이렇듯 보수가 사분오열된 채 각개 약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쪽 통합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르면 여당만 어부지리를 얻는 형국이 된다. 보수가 꿈꾸는 4·15총선 승리 바람은 물 건너간다.

TK 국회의원들도 공천 눈치만 보고 있어 지역민들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다. 찌질한 금배지라고 욕먹어도 대수롭잖게 여긴다. 타 지역에서는 쇄도하고 있는 불출마 선언 한국당 의원이 단 1명 뿐이다. 모두 배 째라다. TK는 인재의 보고다. 각계각층에 인물이 넘쳐났다. 그런데 지금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들은 법조계와 공무원 출신 일색이다. 호황 속 인물난이다.

대신 한물간 정치인들이 다시 표를 구걸하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역에 출마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겠다고 호언장담이다. 물론 100세 시대에 경륜 있는 노회한 정치인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 시즌만 되면 얼굴을 내미는 철새 정치인들은 사절해야 한다. 정치가 업이 된 전문 꾼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또하나 지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대권주자 반열에 들만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승민 의원은 보수 통합을 어렵게 하며 발목이 잡혔고 민주당의 대구 수성갑 김부겸 의원은 자신의 생사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처지다. 홍준표 전 대표는 대구 출마가 여의치 않자 자신의 고향인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지역 공천 신청을 해 험난한 공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나마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험지 출마를 자청,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기력한 한국당, 탈태환골 가능할까

지역의 대표 주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걱정해야 할 어려운 입장에 내몰린 채 주변을 돌아볼 처지조차 되지 않는 궁벽한 형편이 돼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지역 정치인들이 보수 빅텐트 아래에 모여 폭주하는 문재인 정부와 586진보 세력을 끌어내리고 난 후 다시 헤쳐모이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과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희생할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매번 파수견 역할을 했던 TK다. 하지만 숙명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억울하다. 보수 야당의 무기력에 몸서리친다. 한국당의 탈태환골과 보수의 재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 ‘쿼바디스 도미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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