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시집『성탄제』(삼애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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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1년 365일 가운데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설날이었다. 그 기다림은 설렘을 동반한다. 추석과 비교하여 그 유익을 계량해 봐도 설이 더 실속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헐렁한 운동화 하나 얻어걸리는 횡재수준 설빔에다 정말로 웬 떡이냐며 따끈따끈한 가래떡이랑 강정 따위 평소 먹지 못했던 맛난 음식들, 그리고 무엇보다 후훗 세뱃돈, 연탄재 구멍에 꽂아 쏘아 올리는 화약놀이, 그 하루만큼은 하늘이 두 쪼가리 나도 행복해마지 않아야할 가족들의 표정 그리고 우리들의 환한 얼굴들. 이보다 더 즐거운 날이 어디 있으랴.

“엄마, 몇 밤만 자면 설이고?” “딱, 한 밤 남았지!” 하루하루 손을 꼽고 툇마루의 기둥을 껴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기다렸던 설이었다. 섣달 그믐밤 어머니는 늘 그러셨다. 턱을 고이고 코딱지처럼 달라붙어 졸고 있는 내게 잠들면 눈썹이 센다고 했다가 종래엔 방으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시곤 했다. 설을 이틀 앞둔 어느 해, 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고 몰래 손바닥 뼘 벌려 잰 문수로 신발을 사들고 오신 엄마. 한 번도 내 손을 꼭 잡아준 적이 없던 아버지가 생애 처음 신게 될 끈 달린 운동화의 첫 끈을 묶어주셨던 그 설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날마다 맞이하는 무덤덤한 햇살이었지만 이날을 기해 일제히 새로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넉넉하지 않아도 넉넉했고 추워도 춥지 않았다. 미리 놋그릇을 말갛게 닦고, 수증기 가득한 방앗간 앞에서 떡살 담은 양은대야를 놓고 긴 줄을 설 때면 설렘은 최대치로 고조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하루 지나 적당히 굳어지면 예쁜 타원형으로 썰리고, 마침내 볶은 쇠고기, 계란지단, 김 등속의 꾸미가 넉넉히 얹힌 떡국이 상 위로 올라와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삶의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거로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꺽 트림을 했다.

착시현상인줄 알지만 머리통이 굵어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설날은 모든 걸 용서해주고 용서받고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한다.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오는 것이지만 이 어찌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닐까.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희망이라는 이름의 해를 같은 방향으로 함께 바라보며 긍정의 지혜를 찾아낸다면, 잇몸을 뚫고 나오듯 오르는 새해의 광채를 선하고 슬기로운 눈으로 다시 본다면, 어느 지붕 아래인들 축복이 넘치지 않으랴.

만 11년 6개월 동안 변변찮은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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