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제일주의의 역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자신의 이익총화를 최대로 하고자 머리를 굴린다. 상대방을 얼루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이해관계와 갈등의 조정을 통해 서로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속내를 먼저 드러내는 쪽이 불리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속내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숨은 의도를 까발려봐야 신뢰만 깨질 뿐이다. 타인의 속내는 추정이고 추론이다.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는 그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거나 ‘인내 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때론 말이 속내를 숨기기 위한 가면으로 기능한다. 그 말 뒤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던 드러난 부분만 인정하고 책임진다. 드러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내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이기심의 자연스런 발로다. 추한 부분은 덮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비밀스런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아름답다. 홀랑 까발리지 않는 것이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길이다. ‘까놓고 해보자’거나 ‘빨가벗자’는 말은 상대방 속내를 몰라 답답하다는 뜻이다. 유치하거나 성마른 성격 탓이다. 내심을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타이밍을 봐야 한다. 물론 마지막까지 버티는 전략이 바람직할 터다. 자기의 이익극대화를 이마에 붙이고 거래하고자 흥정하는 사람은 덜 떨어진 바보다. 이기심을 본능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상호 양보하는 전략이 파이 총량과 서로의 몫을 키우는 윈윈전략이다.

이기심 논리는 그 범위를 국가로 확장해도 국가 최소 구성원이 인간이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 자국제일주의 기치를 명시적으로 내걸고 자국의 최대이익을 추구한다고 큰소리치는 지도자는 철부지라는 결론이다. 대놓고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보호무역은 무역장벽을 높이는 유인으로 작용하여 종국적으로 자국 이익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명시적 자국제일주의는 부메랑이다. 자유무역이 모든 나라의 이득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제국주의와 같은 패권주의 정책은 파국을 초래한다는 점을 값비싼 경험으로 체득하였다. 협력과 교류가 파이를 키우고, 자유와 경쟁이 각자의 몫을 늘인다. 언뜻 보아 손해 보는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세계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궁극적으로 자국제일주의를 충족시켜준다. 패러독스라 일컫기도 이젠 고루하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자국제일주의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제일주의를 무슨 고유한 특허인양 목소리를 높이는 작금의 작태를 보노라면,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중국의 시진핑은 ‘분발작위’를 내세워 ‘대국굴기’하자고 한다. 덩샤오핑 이래로 ‘도광양회’ 전략을 채택해왔으나 개혁·개방 정책의 조그만 성공에 힘입어 자신감을 얻었던 모양인지 만천하에 그 본색을 드러내었다. 종래의 내실 전략을 버리고 확장 전략으로 변경하였다. 도광양회는 ‘힘을 기를 때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쌓는다.’는 전략이다. ‘도광(韬光)’은 ‘빛을 감춘다.’는 뜻이고, ‘양회(养晦)’는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분발작위 대국굴기’는 ‘때가 되었으니 정체를 드러내고 크게 일어난다.’는 말이다. 분발작위(奮發作爲)는 ‘떨쳐 일어나 할 일을 한다.’란 뜻이고, 대국굴기(大國崛起)는 ‘대국이 일어난다.’란 의미다. 국제사회에서 숨거나 양보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겠다는 것으로 자국제일주의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국제일주의의 대표 격이다. 트럼프는 어린애처럼 오직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우방을 겁박하고 있다. 돌고 돌아서 새끼가 새끼를 치는, 어마어마한 우회적 간접 이득은 못 보는 것인지, 일부러 안보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생각할 여지도 없이 단순명쾌한 점이 장점이라면 할 말은 없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온 러시아의 차르, 푸틴도 대국주의를 앞세운 겉똑똑이다.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 수행이 가능한 강력한 국가를 만들려고 이웃나라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본의 군국주의자, 아베도 자국제일주의의 노예이긴 마찬가지다. 영국의 강경우파 존슨은 자국만 살자고 브렉시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게 이득이 될 지는 부정적이다. 필리핀의 못 말리는 럭비공, 두테르테도 무늬만 자국제일주의다. 모두 대세를 거스른 반동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철 지난 종족주의나 국가주의 함정에 빠진 철부지일 뿐 세련된 지도자라 하기엔 유치찬란하다. 하긴 뭐가 뭔지 모르고 봉 노릇하는 사람보다야 낫긴 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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