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백무산

줄잡아 그의 재산이 5조원을 넘는단다/ 그 돈은 일년에 천만원 받는 노동자/ 50만년 치에 해당한다/ 한 인간이 한 세대에/ 50만년이라는 인간의 시간을 착취했다/ 50만년// 불과 1만년 전에 인간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5만년 전에 크로마뇽인은 돌과 동물의 뼈로/ 은신처를 짓기 시작했다/ (중략)// 우리들의 투쟁이 돈이 아니라 돈으로 왜곡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인생의 세월을 되찾는다는 것을/ 틀림없이 확인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과도 싸워야 한다

- 시집 『인간의 시간』 (창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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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나올 무렵에 5조 원이 넘는 자산가라면 이건희 회장 정도일 것이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병석에 있는 그의 재산은 보유주식 가치만으로 20조에 달한다. 지난 해 포보스의 발표에 근거한 것으로 이것도 전년에 비해 18% 줄어든 수치다. 이번에 작고한 신격호 롯데명예회장의 국내 개인재산이 1조 원 정도라고 하니 비교가 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기본적으로 노동의 잉여가치 생산과 그것을 전유하는 자본가와의 갈등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이 가져온 다른 칼날을 주목하였다. 그는 자본가가 부를 가질수록 노동자는 더욱 가난해진다는 착취의 고리로 자본주의를 바라보면서 노동자들을 자극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사유재산의 폐지와 같은 사회적 시스템을 통하여 인간 사이의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폐기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번만큼 내가 소유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사유재산의 인정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분배가 고르게 잘 되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사실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 과거 성장 우선주의자들은 일단 성장을 위해서 국민들에게 인내를 요구했고 골고루 잘 살지 못하더라도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일단 파이부터 키워놓고 그 다음에 나누자는 것이다. 분배는 훗날 생각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자연스럽지도 않고 정의로운 생각도 아니다.

‘미안하지만’ 당장은 불평등 양극화도 두고 보겠다는 뜻이다. 우선은 부를 부자들에게 몰아주어 그들이 투자를 하게끔 하고 고용을 창출케 하여 소득의 증대를 기대해보자는 논리다. 여기가 자칫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똬리를 틀기에 최적의 지점이 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이게 과거 박정희 시대에서부터 보수정권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부국 경제논리다. 물론 김대중 정부이후 보수진보를 거치는 동안 분배 부분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미흡하고 재벌과 노동자의 차이는 ‘50만년’이다. 재벌기업은 사내 유보로 돈이 쌓이고 있다.

이 거대자본을 상대로 투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달리 맞설 수단도 없다. 유일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투쟁이 돈이 아니라 돈으로 왜곡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을 인생의 세월을 되찾는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투쟁은 되찾음이며 원래 모습으로의 되돌림이다. 자본에 의해 잃어버린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과도 싸워야 한다’ 어쩌면 내가 시 따위를 만지작거리며 노는 이유도 그런 수단의 일부일지 모르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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