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 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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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이는 왜 그렇게 빨리 죽었다냐?”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병사 송강호의 대사다. 1996년 1월6일 서른셋의 나이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죽음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의문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가장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던 시기였기에 더욱 미스터리다. 이 ‘시’는 그가 작사한 노랫말이다. 그의 노래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이지만 다른 대중가수와는 다른 면이 있다. 평론가를 포함한 문인들에게 문학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김광석을 꼽았다.

그의 짧은 생애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어느 천재 요절시인과 닮았고, 맑고 서정적인 목소리가 시적이며, 아픔과 허무가 밴 노랫말과 가락들이 모두 문학적인 서정을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서른 즈음에’는 음악평론가들이 뽑은 1990년대 이후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른 즈음에'는 30~40대 청춘들의 삶을 융숭 깊게 했으며,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황지우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생을 성찰케 하면서 그들을 위로했다.

오래 전 한 주점에서 군에 입대하는 친구를 위한 젊은이들의 송별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 주점의 스피커에선 청춘의 송가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고 잠시 가게 안이 조용했으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란 대목에 이르자 무리 가운데 여자 하나가 훌쩍훌쩍하더니 기어이 모두가 엉엉 울어재끼는 광경을 본 일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그렇듯 사랑을 더 열렬하게 하고 이별을 더욱 애틋하게 하며 삶을 진지하게 만든다. 그의 노래는 정갈한 고독과 우수를 느끼게 하고 시적인 울림으로 공명한다.

김광석을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가 살아있다면 올해 쉰일곱이다. 사후 24년이 흐른 지금껏 그의 노래는 끊임없이 리메이크되고 새롭게 조명되어 살아있는 웬만한 가수보다 활동 폭이 넓고 우리들 삶 속에 살아서 함께 호흡한다. 우리 대중문화에 김광석 현상으로 자리 잡은 그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그가 태어나고 떠난 달이 모두 1월이니만큼 매년 이맘때면 그를 추모하며 곳곳에서 김광석을 다시 부른다. 그의 고향인 대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길은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된지 오래다.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하여 그 향수와 낭만을 찾아 10대에서 60대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를 몰랐던 젊은이들도 그의 노래에 빠져들어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따라 부른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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