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오염과 국가 경쟁력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요란하게 거리를 떠도는 말들이 우리의 심기를 몹시 심란하게 했던 한 해했다. 대로 양 끝에서 외쳐대는 분노의 고함 소리 때문에 길 중간 지점이나 골목길에서 조용하게 담소를 나누기가 어려운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정치 언어란 거짓말도 진실처럼 들리게 하고, 살인도 당당하게 보이게 하고, 공기조차도 움켜잡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라고 한 조지 오웰의 말이 크게 와 닿는다. ‘분노’가 개인의 삶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한 사례는 많다. 해방 이후 극심한 혼란과 격동의 시대를 거쳐 오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정변에는 민중의 분노가 체제 변혁의 직접적 동인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어느 시대나 정치 지도자들은 민중의 분노에 편승하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상과 야망을 실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문제는 분노의 범람과 과잉이 핵심 쟁점과 본질을 놓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틀리고 왜곡된, 합리성을 상실한 분노는 불신과 증오를 증폭시키면서 맹목적인 지지와 반대로 발전하여 사태 해결에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만연해 있는 조롱과 냉소, 혐오의 말들 근저에는 부추겨지고 조작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분노가 들끓는 거리에는 대화와 타협, 배려와 양보보다는 근육질의 논리와 주장, 아우성이 상식과 순리를 압도했고, 지금도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일상화된 곳에서는 소수의견이 보편적 의견으로 비약되고, 비전문적 아마추어리즘이 전문적 프로페셔널리즘을 무력화하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품격과 품위, 질을 떨어뜨린다. 우리 사회에 가득한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는 에너지가 건전한 비판, 정당한 문제 제기, 대안 도출을 위한 방향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면, 국민은 아무 실익도 챙기지 못한 채 다양한 이익집단의 끝없는 정쟁에 이용당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작금의 정치판을 바라보면 어느 쪽이나 품격과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차별화된 철학이나 지혜도 없다. 오만과 독선, 독소가 가득한 독버섯 같은 말들뿐이다. 양식 있는 국민들은 바닥 민심은 파악하지 못한 채 대안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우파에 절망하고,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오만하면서도 세상 물정 모르는 좌파에 좌절하고 있다. 천박한 정치적 구호와 내용 없는 장광설에 진저리가 난 국민은 허망한 말의 성찬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여지와 여운을 남기는 말을 기대하고 있다.

앤디 워홀은 팝 아트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시각예술운동가이다. ‘라이프’지는 그를 비틀스와 함께 196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 작품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해도 애매모호한 말한 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질문하면 “나를 알고 싶다면 작품의 표면만 봐주세요.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철저하게 표면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작품의 뒷면, 그가 하는 말의 이면에 뭔가 대단한 것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사람이란 말없이 가만히 있을 때 힘을 가진다”라고 했다.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며 침묵하거나, 말을 하더라도 그냥 몇 마디만 수수께끼처럼 툭툭 던질 때, 사람들은 그 속에 뭔가 심오한 철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런 화법에 매료된다. 많은 사람들이 선문답 같은 말들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정치권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정치는 말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결합될 때 빛나는 종합예술이다. 정치가의 말엔 원칙의 나열보다는 구체적인 수단이 담겨 있어야 한다. 국민은 그들이 소망하는 것들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는 진실한 말을 기다린다. 군중의 심리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감성을 자극하여, 그들의 분노와 증오심으로 집단적 광기를 증폭시키며 극단적인 막말을 확대 재생산해서는 안 된다. 천박한 언어는 사람의 심성을 황폐하게 만들며 영혼을 병들게 한다. 높은 단계의 민주화란 정치적 수사학의 진화를 의미한다. 정치인들이 함부로 내뱉는 오염된 말들이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