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해 마지막 정기국회마저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다. 선거제개편안과 검찰개혁안을 놓고 한껏 힘겨루기를 벌여오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얘기다. 민생경제 관련 법안 처리가 기대됐던 마지막 정기국회였지만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카드에 민주당이 보이콧으로 맞서면서 법안 처리 역시 무산됐다. 여론은 즉각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치권에는 별무효과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이해 충돌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회에서부터 지자체, 하다못해 동네일 처리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중도에 흐지부지되는 경우를 쉬이 볼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민주주의 기본권인 의사표현의 자유가 자유롭게 표출되면서 나타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주장만 난무하지 도대체가 합의할 줄 모르는 난장판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처럼 다양하고 엇갈린 주장을 자주 접하게 되는 세상이 되면서 우리 사회가 이를 적절하게 조정, 합의해 나가는 기술을 차근차근 배워가며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자주 듣게 되는 ‘공론화(公論化) 과정’이란 말 역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여러 방법의 하나다.

최근 대구·경북에서는 지역의 미래가 걸렸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고 그 영향력과 파급력도 큰 문제들이 힘들지만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통합신공항과 대구신청사 이전 문제가 그렇다. 아직 최종 결정까지 남은 절차가 있지만, 어쨌든 그동안의 진행 과정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두 문제는 처음 의제로 제시되자마자 다수의 이해관계가 걸렸던 만큼 여러 주장이 펼쳐졌다. 지역발전 기대감에다 그와 관련된 경제적 득실 계산까지 겹쳐지면서 저마다 유치 당위성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절충점으로 수렴될 기미는커녕 대결 양상으로까지 갈등은 점점 커지는 모양새가 됐다.

결국 통합신공항 문제는 국방부의 공론화 과정 제안으로 갈등 수습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제안에 따라 먼저 전문가집단의 ‘시민의견조사위원회’가 구성됐고 여기서 공론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할 시민참여단 구성안을 마련한 것. 무작위 표본추출과 개별면접 방식으로 뽑힌 시민참여단은 첨예하게 맞선 쟁점을 다루는 데 있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됐다.

또 현재 대구 시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대구시신청사 입지 결정도 공론화가 실타래를 풀어가는 해법이 됐다. 신청사 유치전은 처음부터 4개 구,군이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지역대결 구도가 형성됐고, 이후 상대 흠집 내기와 온갖 악의적 설(說)까지 쏟아지면서 결정 이후의 후유증마저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쟁이 과열됐다.

이 같은 갈등, 대립 상황에서 중립기구로 공론회위원회가 구성됐고, 여기에서 결정의 공정성을 뒷받침하게 될 시민참여단의 구성 방법과 숙의형 민주평가 방식이라는 공론화 과정을 결정했다. 이제 시민참여단은 12월20일부터 2박 3일간 합숙하며 신청사 입지를 결정하게 된다.

사실 공론화니, 공론화 과정이니 하는 말이 우리에게 전연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수년 전 논란이 됐던 탈원전 문제 처리 과정에서 이를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탈원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문 정권은 2017년 집권 이후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시켰다. 그러자 독단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이에 맞서 당시 정부가 들고나온 것이 공론화 카드였다. 결과적으로 공사가 재개돼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지만 국민 뜻을 따랐다는 명분은 세울 수 있었기에 별 손해 없는 선택이었던 것.

합의의 기술은 근래 모든 분야에서 그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경향은 민주적 절차라는 방식이 생활 속에 더 많이, 깊이 들어오게 될수록 더욱 그럴 것으로 예견된다. 그만큼 이해 충돌과 갈등 요소가 많은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협상과 합의의 기술, 즉 공론화에 대해 우리가 언제 배운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국민들은 토론하고, 타협하는 사회적 합의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회는,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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