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 오철환
최선의 신청사 입지선정을 바라며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대구시 신청사 입지선정을 위한 최종 평가일이 오는 22일로 바짝 다가옴에 따라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른바 ‘숙의 민주주의’ 방식이 지자체의 민감한 현안을 해결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유용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라있다고 할 수 있다. ‘숙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관련 사항을 공부하고 토론한 뒤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의사결정시스템이다.

조사업무 전문기관이 표본을 추출하고 개별적으로 면담과 동의를 거친 다음 이들 중 총 252명을 시민참여단으로 위촉했다. 8개 구·군 29명씩 일반시민 232명, 전문가 10명, 시민단체회원 10명, 총 252명이다. 2박3일 동안 합숙을 하면서 각 후보지를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후보지별 장단점을 학습한 후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기획되어 있다. 7개 평가 항목별(1~10점)로 시민참여단 점수를 합산해 일천 점 만점으로 환산하고, 그 중 최고점수를 받은 후보지가 최종입지로 낙점된다.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는 과잉 대응하는 지자체엔 페널티를 주겠다고 공언해왔다. 과열 행위로 인정되면 최대 30점 감점이라 한다. 이는 총점의 3퍼센트로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 페널티로 인해 최종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그 판단 결과가 대구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사인데다 절대적 우열이 존재하기 힘든 성질의 사안인 만큼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확신도 서지 않고 부담감도 클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감점의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불과 11.7점 차로 입지가 결정된 경북 신청사 선정의 경우를 보더라도 페널티를 무시할 수 없다.

페널티는 공정성 담보용이지 결코 본질을 판단하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과잉 홍보했다는 이유로 구리를 금보다 낫다고 평가할 수 없다. 페널티가 입지를 선정한다면 누가 그 정당성을 인정할 것인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다. 본안심사 결과로 최고최선의 입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상이다. 신청사의 입지조건, 건축비, 사회간접자본 조성비, 각 후보지의 기회비용, 매몰비용, 사회적 비용편익, 연관효과 등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가 본안심사의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신청사 입지를 페널티로 결정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역사적 조롱거리로 남을 것이다. 대구의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과열 경쟁을 예방하고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자는 공론화위원회의 페널티 적용 취지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페널티 감점이 입지의 결정적 인자로 작용하는 상황은 옳지 않다. 페널티 감점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정성을 보장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입지를 결정한다는 당초 취지에도 맞지 않다. 오히려 경쟁 지자체간 갈등을 증폭할 가능성이 크다. 시민참여단이 합숙까지 하면서 학습과 토론 그리고 논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현안을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숙의 민주주의의 본질에도 어긋난다.

대구시 신청사 건립은 대구의 미래 비전을 결정지을 수 있는 불가역적 사업이다. 이러한 사업의 입지결정은 민주적 과정 못지않게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면모도 중요하다. 여론의 반영이나 정치적 고려도 감안해야겠지만 대구의 발전을 위한 담대한 도전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절차적 정의와 실체적 정의가 갈등을 일으킬 경우 실체적 정의를 추구해야 맞는다. 페널티 감점 요인이 신청사의 입지를 결정하는 상황은 터무니없고 생뚱맞은 난센스다.

페널티는 스포츠에서 유래한다. 스포츠 경기는 개별적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고 일반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페널티가 주어지면 선수의 불명예나 부담으로 끝나고 경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은 드물다. 스포츠는 공정성을 지키는 페널티와 궁합이 잘 맞는다. 반면 신청사 입지선정과 같은 공적 평가는 제로섬 게임도 아니고 그 결과가 보통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한 영향을 미친다. 페널티와 별로 친하지 않다.

최종 평가 과정에 페널티 감점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목적적합성을 지키는 길이다. 후보지간 점수 차를 최소한 30점 이상 두도록 평가하여 페널티로 인해 순위가 바뀌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는 장치도 한 가지 운용의 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적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비난을 피하기 힘들긴 하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결정을 그르치기엔 그 대가가 장기적이고 가혹하다. 큰 걸 건지기 위해 작은 걸 희생할 줄 아는 결단도 때론 지혜로운 선택지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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