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 정명희
측은지심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해가 저물어간다. 언제나 따라붙는 수식어인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든다. 신나고 들떠서 떠올랐던 해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송년 모임으로 일행 여럿이 함께 바쁜 일과를 마치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일행들이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은 노곤해도 가슴에는 무엇인가 그득한 표정이다.

순조롭게 행사가 끝났기에 일행들에게 기념 촬영을 하자고 제안했다. 피곤 할 터인데도 사진을 남긴다는 제안에 저마다 한껏 자태를 뽐내며 역 표지판을 배경으로 배우처럼 늘어섰다. 돌아가며 사진을 찍기 위해 한사람씩 빠지게 되는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일행 모두가 들어있는 사진이 있으면 더 역사적이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 지나는 행인에게 부탁하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몇몇은 의도를 간파한 듯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그냥 옆으로 비켜간다. 그만두어버릴까 싶은 마음이 드는 찰나, 착해 보이는 한 사람이 나와 눈이 딱 맞았다. 그의 앞에 바싹 다가서서 사진 한 장만 찍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측은한 표정이 이는듯하였다. 어쩌랴, 이왕 빼든 칼이니. 단호한 표정으로 찍어 달라고 하자 그가 얼른 이어폰을 빼서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더니 이런 표정, 저런 자세를 요구하며 사진을 자꾸만 찍어 댄다. 그러면서 점점 더 뒷걸음질 치면서 자기 가까이 더 다가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이왕 할 바에야 역작이라도 남기려는 듯 찬바람이 쌩쌩 부는 자정 가까운 역 광장에서 모델(?)들에게 자꾸만 다가오라고 요구하는 그를 보면서 왠지 수상쩍은 마음이 일었다. 자꾸 뒤로 물러나더니 드디어 앵글이 맞았는지 이제 그 자리에 한 번 서 보라고 한다. 손가방과 짐들은 우리의 등 뒤 저 멀리에 있고 휴대폰을 바라보고 눈을 맞추자니 곧 우리들의 소지품들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자꾸만 드는 이상한 느낌에 사진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가 얼른 셔터를 누르기만 빌었다. 그의 모습 뒤로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각까지 군밤 화로를 두고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이의 실루엣이 비친다. 화려한 불빛아래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하고 서있는 사람, 찍으려고 뒷걸음질치며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 덩그러니 남겨진 소지품들, 식기 전에 팔아야 오늘의 일을 마치고 따스한 아랫목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벙거지 쓴 연세드신 분. 크리스마스를 앞둔 세모의 역 광장의 군상들이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들게 한다.

사진을 다 찍고 휴대폰을 건네주는 그의 눈을 보니 아무런 사심이 없는 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괜스레 짐 걱정을 해가면서 가슴 졸였던 순간이 부끄러워진다. 모두 믿고 살고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다 드러내 보이지도 않고서 섣불리 부탁할 것을 미리 알아차리지 않는다고 차가운 사람으로 여기고, 잠깐 두는 짐조차 걱정할 정도로 세상을 의심에 찬 눈으로 본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언젠가 지인이 역에서 어떤이가 길을 물어서 잠시 가르쳐 주느라고 이야기 하는 동안 옆에 둔 짐 가방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혹시? 하는 마음이 일곤 했다.

사람의 감정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일까 미움일까 측은지심일까? 늘 몸이나 마음이 아픈 이를 대하며 치료자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측은지심이 가장 강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상대를 대할 때 불쌍한 마음이 든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지고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생각할까. 왜 그리 행동할 수 밖에 없을까. 나라도 그 상황에서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랴 하는 그러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갱년기에 접어든 후배가 어느 날 의논할 것이 있다고 찾아왔다. 남편이 왠지 모르게 하는 짓마다 미워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선배는 그렇지 않더냐? 묻는다. 나는 한참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사랑하여 결혼하였고 아이 낳고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으니 이젠 나이 먹어서는 그런 감정보다는 서로에게 측은지심을 가지면 그것은 영원히 갈 것이니 상대를 불쌍히 여겨보라고 조언하였다.

하느님도 측은지심으로 병자들을 돌보지 않았던가. 측은지심이 가득한 세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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