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송 / 문인수

세 사내는 친하다. 작당이 아니라 모국어처럼 합수처럼 친하다. 1955년생, 동갑내기에 똑같이 삼형제 중 장남이다. 세 사내는 ‘오늘의 시’ 동인이다. 표정이 비슷하다. 그늘이 깊다. 나고 자란 이야기가 애솔 같아서 과목이 같은 침엽의 어둠이 전신에 예민한 것이겠다. 나는 세 사내의 성명 첫 글자를 따 ‘장엄송’이라 부른다. 셋 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빼닮았단 소릴 들으며 자랐다. 예감처럼 전이처럼 그리움처럼 아버지의 병마가 수도 없이 마음속 문맥을 건드리며 다녀갔다. (중략) 세 사내는 쉬! 죽음에 대해 평소 구면인 듯한 말투다. 전력처럼, 혹은 마중이라도 나갈 것처럼 죽음을 말하곤 한다. 공것처럼, 덤이라도 얻은 것처럼 서둘러 노년을 시작하려는 눈치다. (하략)

- 시집 『적막 소리』(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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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내’는 각자의 성을 따다 붙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장옥관, 엄원태, 송재학 시인을 일컫는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대구 시단의 중심이고 자부심이다. 이들을 빼고 대구의 시를 말한다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물론 이들은 대구뿐 아니라 한국 시단을 굳건히 떠받히고 있는 시인들이다. 가나다순으로 하면 송재학, 엄원태, 장옥관이 되고 등단 순으로 쳐도 그렇다. 여기서는 그 역순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순서를 바꾸어도 그들은 불만이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절친’이고 도반이며 서로가 서로를 경배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장옥관은 등단의 유예기간은 상대적으로 다소 길었지만 그는 현재 계명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의 절정기에 와있다. 장옥관이 엄원태를 처음 만난 것은 1985년 무렵이라고 한다. 경북고, 서울대 출신으로 만 27살에 대학교수가 된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는 소문을 접한 터여서인지 귀공자 타입의 그가 괜히 밉상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어떤 방면에서든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여 다른 이를 압도하고 기를 죽게 하는, 선망의 인물쯤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못하는 게 없고 가끔씩 격조 높은 노래까지 멋들어지게 잘 부른다.

그 이전에 그들은 ‘오늘의 시’ 동인이었다. 송재학, 장옥관, 김재진 등이 주도했던 ‘오늘의 시’에 엄원태를 끌어들인 사람은 송재학이었다. 문인수의 대구고 후배이기도 한 송재학은 경북 영천 출생으로 경북대 치과대학을 나온 치과의사이다. 낮에는 치과의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일에 수십 년간 몰두해왔다. 치대예과 재학시절 궁벽한 시골집에 틀어박혀 민음사판 ‘오늘의 시인총서’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으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그때를 ‘문학공부란 절망에 대한 헌정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언젠가 문인수 시인으로부터 “송재학은 천재에다 공부가 더해진 시인”이란 평가를 들은 바 있다. 실은 셋 모두 얼마간의 천재성에다 공부가 곁들여진 시인들이다. 그들을 또 하나의 동류항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문인수 시인을 포함해 모두 ‘김달진 문학상’ 수상자들이라는 점이다.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소멸의 운명을 ‘쓸쓸한 긍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있겠냐만, ‘서둘러 노년을 시작’하면서 박차를 가해서인지 이제 그들도 내년이면 공식 ‘노년’의 반열에 들어선다. 시에서도 그들의 긍휼이 더욱 깊어질 것 같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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