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키스 / 장옥관

물이 빚어낸 꽃이 나비라면/ 저 입술, 날개 달고 얼굴에서 날아오른다/ 눈꺼풀이 닫히고 열리듯/ 네게로 건너가는 이 미묘한 떨림을/ 너는 아느냐/ 접혔다 펼쳤다 낮밤이 피고 지는데/ 두 장의 꽃잎/ 잠시 머물렀다 떨어지는 찰라/ 아, 어, 오, 우 둥글게 빚는 공기의 파동/ 한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그 순간/ 배추흰나비 粉가루 같은/ 네 입김은 어디에 머물렀던가?

- 시집『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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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남녀는 만난 지 평균 일주일이면 키스를 감행한다고 한다. 첫 키스까지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을 넘는 경우는 드물고 그럴 땐 오히려 주위의 조롱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푸른 시절 모든 사랑의 단계들이 신비롭고 조심스럽기만 해서 손 한번 잡는데도 몇 달이 걸리곤 했던 신선한 두근거림은 이제 오간데 없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진도를 차곡차곡 충실히 밟았을 땐 친구들이 “어디까지 나갔어?”라며 초롱초롱한 호기심으로 물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잤냐?” 라는 간략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경험들 하셨겠지만 한번 나간 진도는 후진하지 않는다. 어제는 진한 ‘프렌치키스’를 했는데, 오늘은 가벼운 ‘나비키스’만으로 어제와 같은 떨림을 느낄 리 만무다. 사랑의 선행조건단계나 도약단계를 건너뛰고 뜨겁게 성숙단계에 진입했다면 탐색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수많은 설렘과 고양된 느낌, 사랑의 화학작용과 발효된 교감은 찾아올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런 세상에서 첫 키스의 미세한 떨림, ‘아, 어, 오, 우’ 지상의 모음을 죄다 끌어 모아 빚어내는 한 호흡의 입맞춤을 어디 풍문으로나 들을 수 있겠는지. 영혼의 호흡이 가능하겠는지.

‘두 장의 꽃잎 잠시 머물렀다 떨어지는 찰라’가 ‘한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그 순간’이 되어 토네이도로 변하기도 하는 ‘나비키스’를 이런 시나 읽으며 지그시 눈감고 그려내지 않으면 어디에서 건질 수 있으랴. 나비키스는 속눈썹을 상대의 뺨에 대고 깜빡이며 간질이는 키스를 말한다. 나비처럼 가벼운 키스이긴 하지만 미세한 속눈썹의 떨림과 뇌의 파동, 그리고 심장의 박동이 일치하는 경험을 갖게 된다. 인간의 가장 큰 성기가 ‘뇌’라는 말이 있듯이 나비키스만으로 충분히 뇌가 발기될 수 있어야 양질의 사랑이 구가되리라.

키스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이 최대한 실린 분위기 있는 키스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5년은 더 장수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사랑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키스는 소량의 모르핀 주사만큼이나 강력한 엔도르핀을 생성하며, 감정이 듬뿍 담긴 키스는 몸속에서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호르몬의 생성을 억제해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며, 자주 키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박테리아에 대항하는 면역물질을 만들어내는 등 키스와 건강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은 이미 통설이 되었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이혼자나 사별자보다 평균수명이 긴 것도,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것도 어쩌면 키스와 무관치 않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수록 배우자가 곁에 있는 것이 건강과 장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가설은 확실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홀아비나 과부도 아니고 멀쩡한 배우자가 곁에 있다면 자신과 배우자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산삼보다 좋다는 이 키스를 잘 ‘활용’들 하시라. ‘네게로 건너가는 이 미묘한 떨림을 너는 아느냐’ 그렇다면 양질의 장수물질인 ‘배추흰나비 粉가루 같은 네 입김은 어디에 머물렀던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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