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 정명희
명품직원 만들기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부서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커다랗게 그려진 동그라미 아래에 적힌 글자는 ‘전 직원 브레인스토밍’이었다. 연말이 되어 여기저기 송년 모임으로 들뜨기 쉬운 날들이지만, 올 한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열리는 행사다.

반공일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엔 공휴일로 쉬는 일요일보다도 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출근할 때부터 마음이 부풀어 있곤 하였다. 지금은 토요일 진료 대신 응급실과 병실, 당직자만 나와서 근무하고 각자 입원 환자를 회진하는 체계로 바뀌어서 외래 진료는 하지 않아 자유로울 터이지만, 모처럼의 휴일에 병원에서 브레인스토밍하러 출근하는 직원 중에는 이마에 내 천(川)자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잘 되는 방향으로 나가 보자고 하는데 달리 방도가 있으랴.

큰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아침을 더욱 더 춥게 느끼게 한다. 손을 불어가면서 하나둘씩 강당으로 모여든다. 한 사람 한 사람 자리에 앉아서 조별로 나뉘어 있는 안내 용지를 받아들고 서 조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칠백여 명의 직원이 여러 부서에 나뉘어 근무하다 보니 그동안 잘 만나지 못하던 이들과 악수를 하며 우의를 다진다.

조별로 나누어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주제에 대한 결론을 얻은 직원들, 파워포인트에 각 조의 의견을 종합하여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짧은 동안 얼마나 열띤 토론을 하였을까. 생각지도 못한 말로 발표를 마무리하는 직원들이 대단해 보인다. 한 해 동안 다른 직원보다 30분 일찍 출근하여 먼저 진료 준비를 한번 해보기로 하였다는 직원, 그동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신입 직원의 이야기가 가슴 찡하게 들린다. 작은 일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한 가지라도 성공하게 되면 그 성공 경험이 쌓여서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언제나 간호사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일일이 챙기던 팀장은 ‘명품 가방과 짝퉁 가방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발표를 마무리한다. 비가 오면 명품가방이라면 비에 젖을까 봐서 품에 끌어안지만, 짝퉁이라면 그다지 아깝지 않을 것이니 내 머리가 비에 젖을까 봐서 머리 위에 올려 비라도 피하게 하지 않던가. 그의 결론은 아무리 진료 환경이 어려워도 소중한 명품을 대하듯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명품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가슴에 품고 끌어안고 나가리라는 다짐이리라.

크레스피 효과가 떠오른다. 공부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는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원의 수행능력을 높이기 위해 총수는 직원의 월급을 어느 정도 올려주기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적이나 일의 성과에 따라서 보상이나 처벌을 한다고 할 때 그것이 효과를 내려면 점점 더 강도가 세져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레오 크레스피’ 교수다.

크레스피 교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였다. 그는 쥐가 미로 찾기에 성공할 때마다 A 집단의 쥐에게는 먹이 1개씩을, B 집단에게는 먹이 5개씩을 보상으로 주었다. 그 결과 먹이 5개를 받은 B 집단의 쥐들이 더 빨리 미로에서 탈출하였다. 이후 크레스피 교수는 A 집단 쥐들의 보상을 5개로 늘리고, B 집단 쥐들의 보상은 1개로 줄였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보상을 늘린 A 집단의 쥐들이 B 집단의 쥐들보다 훨씬 더 빨리 미로를 탈출하였고, 보상을 줄인 B 집단의 쥐들은 A 집단의 초기 성적보다 훨씬 낮은 수행능력을 보였다.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얼마의 보상을 받느냐가 일의 능률 향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실험이었다. 당근 전략 또한 긍정적 수행능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적절히 사용할 경우 시행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도출한다. 경제적, 물질적 보상이 당연시되면 계속해서 ‘전보다 더, 전보다 더’를 원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칭찬이 계속되면 그것이 당연해지다 점점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질책이 계속되면 점점 비난, 폭언 등으로 나아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동료 직원의 능력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크레스피 효과를 기억해 두면 좋지 않으랴.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모든 직원이 명품이 되어 날마다 즐겁고 신나는 직장의 하루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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