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 황지우

12월의 저녁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 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 품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 시집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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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우리들 생각은 사는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에 대한 감상, 12월을 맞는 느낌도 살림의 형편에 따라 제각각이다. 훈훈하고 포시라운 곳에서 할랑하게 일하며 두둑한 연봉을 받는 사람과 난방도 시원찮은 곳에서 빡세게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12월은 다르다. 겨울에 노가 나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과 길거리 행상을 하며 곱은 손으로 구겨진 천 원짜리 지전을 꺼내 펴서 몇 번이고 세고 또 세는 사람의 정서는 분명 다르다. 자본주의는 내내 이런 다름을 방관하고 부추겼다.

가슴 미어지는 죽음들,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정치권 뉴스들로 넘치는 이 나라의 12월, 마냥 행복에 겨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이럴 때 자칫 도가 넘는 럭셔리풍의 겨울 찬가가 다른 등 굽은 이에게는 ‘악마의 트릴’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보너스를 안주머니에 챙겨 넣고서 장작불이 타는 별장으로 스키장으로 바다 건너로 내빼는 이가 있는가 하면, 12월에 상실감으로 번뇌가 더욱 깊어진 사람도 있다. 순수한 겨울 낭만을 즐기는 거야 누가 뭐랄 까만 신경질 나게 타인의 쓰라린 가슴에 소금을 뿌려대며 방방 나대는 일만은 없으면 좋겠다.

가지고 배웠고 누리는 자는 좀 더 겸손해야하고, 가난하고 덜 배우고 못난 자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 나라의 정신토양이 건강해지는 법이거늘, 언제나 문제는 그 부조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려 늘 조바심으로 마음만 붐비며 동당거렸다. 문득 허무가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렇게 살아 존재한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절대강자’라며 이외수는 과장된 ‘말장난’으로 우리를 위로했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삶에 마음이 무겁다.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나라 안의 정국은 수상하고 신산하기 짝이 없어 추위는 더 진하게 감각된다. 하지만 대저 삶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내 둘레의 생도 그럴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이라면서 ‘가난은 다만 불편할 뿐이고 사랑은 또 은유처럼 오거나 가는 것’이라 했던 김경주의 시가 가슴에 스친다. 12월의 저녁거리를 걸으며 몇 남지 않은 가족에게 미안하고 부채감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래도 백화점 앞 12월의 나무에는 희망인지 현혹인지 모를 꼬마전구의 무리가 쉼 없이 반짝인다. 탁상달력 다닥다닥 메모된 12월의 틈바구니에서 누군가는 잠을 설치고, 누구는 술에 취해 거리를 비틀거릴 것이며, 또 누군가는 기도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이러할 때 누구는 술 마시고 노래하는 분답한 송년모임을 단 한 건도 갖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지만 그조차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소시민의 삶이다. 나는 무엇을 할까? 해답은 없고 질문은 생경하기만 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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